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29 조회수977 추천수17 반대(0) 신고
 
2007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There are six days when work should be done.
Come on those days to be cured, not on the sabbath day.”
(Lk.13.14)
 
제1독서 로마서 8,12-17
복음 루카 13,10-17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어떤 사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부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신부님, 제가 정말로 이래서는 안 되는데, 사업 문제로 하도 답답해서 어제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제 손을 보더니만, 저의 운명이 엉망이라서 그렇다고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이렇게 점괘가 나오니까 더 답답한 마음이 생기고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 길래 왜 점을 보십니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어야지요.” 그리고는 손을 한 번 펴보라고 말씀하세요.

“아마 손바닥에서 이것을 감정선, 이것을 운명선, 이것을 생명선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그럼 손을 꼭 쥐어보세요.”

이 형제님은 손을 꼭 쥐고는 신부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형제님께 말씀드렸던 감정선과 운명선과 생명선은 어디에 있지요?”

“어디 있긴요? 바로 제 손 안에 있지요.”

“맞습니다. 바로 형제님은 형제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입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하지요. 그것은 우리들의 삶을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내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합니까?”

나의 의지에 따라 달려있는 내 삶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억울합니까? 더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유의지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우리들과 함께함으로 인해서 이 고통과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님과 함께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헛되고 무의미한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람들도 잘못도 큽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이들의 삶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회당장과 같은 사람이지요.

회당장은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러 온 군중들에게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요.

안식일에는 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치료 받으러 와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 법은 단순히 일하지 않는 법이 아니지요. 엿새 동안의 일로 힘든 육체를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사랑의 치유행위는 안식일법보다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회당장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사랑’이라는 주님의 법보다는 다른 외적인 것을 더욱 더 중요시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또 한명의 회당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원칙을 따르는 멋진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원칙을 잊지 마세요.





그의 마음을 헐뜯지 마라(‘행복한 동행’ 중에서)
 
고대 페르시아 어느 왕의 이야기다. 그는 정사를 잘 돌볼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나 주군으로서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에 현자들이 넘쳐 났으며, 페르시아 왕국은 날로 풍요와 번성을 누리며 복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태평천하에도 음해의 세력은 있기 마련, 어느 날 한 대신이 왕이 매우 아끼는 한 측근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내용은 왕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측근에 둔 그 신하가 겉으로는 충성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호시탐탐 배반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왕은 상소에 주석을 달기 시작했다. 주석을 다는 그의 손놀림은 매우 무거운 듯했다.

상소를 올려 측근을 음해한 대신은 이후에 벌어질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이 친히 주석을 단 상소를 펼쳐 본 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이뤄 놓은 업적을 바탕으로 그의 능력을 판단할 따름이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서 판단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람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그의 마음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밀고장을 냈던 대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왕의 글을 읽고 난 뒤에는 얼굴이 귀밑까지 달아올랐다. 대놓고 그를 벌하는 것보다 더욱 곤혹스러웠다. 이후 그가 남을 헐뜯는 상소를 올리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왕이 무엇보다 경멸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말로 다른 사람을 모략하는 일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손쉽지만 가장 비열하고 비겁한 처세이기 때문이다.
 
 
 “Hypocrites!
Does not each one of you on the sabbath
untie his ox or his ass from the manger
and lead it out for watering?
This daughter of Abraham,
whom Satan has bound for eighteen years now,
ought she not to have been set free on the sabbath day
from this bondage?”
(Lk.13.15-16)
 
 
 

Je t'aime mon amour (사랑하는이여) - Claudia Jung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