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산산조각난 항아리를 다시 붙이려 하지 말라 / 정호승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30 조회수656 추천수7 반대(0) 신고
 
 

 

 

 

 

산산조각난 항아리를 다시 붙이려 하지 말라 / 정호승


  우리는 일생 동안 온전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고 무사하게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시내버스 운전석 앞에 ‘오늘도 무사히’ 라는 글귀와 함께 기도하는 소녀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바로 그것처럼 무사한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허망한 바람일 뿐, 부서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 인생이란 없습니다. 무사한 인생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인생이든 어느 시점에 반드시 망가지거나 부서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본질입니다. 다만 어느 때 어떻게 그것이 찾아오느냐 하는 것만이 저마다 다를 뿐입니다. 만일 망가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언젠가 이천에 있는 젊은 도예가 집에 한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 도예가는 장작을 때는 전통적인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었는데, 가마 주변에 깨어지고 버려진 도자기들이 즐비했습니다. 저는 그 도자기들이 무척 아깝게 여겨졌습니다. 비록 버려졌다 하더라도 그대로 집에 가져가 쓰면 그것대로 훌륭한 그릇이 될 수 있는 것들도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이 아까운 것들을 다 내버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빙긋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습니다.
  “아까워하지 마세요. 저렇게 깨어지고 버려지는 도자기가 있기 때문에 훌륭하게 완성되는 도자기가 있는 겁니다. 저것들은 저것들대로 자기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저기 저렇게 있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깨어지고 버려졌다고 해서 그 가치가 완전히 소멸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연탄재 한 장도 비 오는 날이면 웅덩이를 메우는 데 쓰이거나 겨울날 빙판길의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데 쓰이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못생긴 항아리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라는 항아리를 자칫 잘못 바닥에 떨어뜨려 박살이 나게 할까 봐 항상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항아리는 언젠가는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넘어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와 깨뜨릴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조금 금이 갔다면 다시 붙여 쓰거나 철사로 동여 쓸 수 있지만 유리창처럼 와장창 깨어져 산산조각이 났을 때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산산조각이 나면 얼른 주워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미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다시 한 몸을 이루어 항아리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돌멩이가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고, 항아리가 돌멩이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다. 이유야 어쨌든 항아리의 불행이다.’ 저는 그 불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 불행을 주워 담아 퍼즐 맞추듯 자꾸 맞추어 원형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 행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깨어진 항아리는 깨어진 그대로 그 존재적 가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깨어진 항아리가 있기 때문에 온전한 항아리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깨어진 항아리가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더 평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텅 비어 있는 항아리는 그 텅 비어 있음을 간직해야 하는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산산조각이 난 항아리를 인간의 힘으로 다시 붙이려는 것은 헛된 노력입니다. 산산조각이 난 항아리를 다시 붙여 물을 길으려면 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산산 조각나게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그것을 다시 붙이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에게 도움을 청하면 신은 산산조각난 항아리 대신 새 항아리를 줍니다. 우리는 그 새 항아리로 다시 물을 길어오면 되는 것입니다.
 새 항아리를 구한다는 것은 찾아온 불행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긍정하고 인정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불행도 불행 그 자체로서 빛날 때가 있습니다. 맑은 날, 산산 조각난 조각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조각에서도 햇빛이 반짝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금이 간 종은 깨진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려놓으면 모든 하나하나의 쇳조각은 맑은소리를 낸다.’
  항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어지니 항아리 조각 하나하나도 햇살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부처님 태어나신 룸비니에 가서 흙으로 만든 부처님을 하나 샀습니다. 어느 날 제가 잘못해서 그 부처님이 산산 조각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산산조각」이라는 제목의 시를 한편 써보았습니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