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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은 신(神)을 생각하는 계절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1 조회수592 추천수4 반대(0) 신고
                           11월은 신(神)을 생각하는 계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한창 시끄럽던 지난 여름에 번역 출간된 종교 관련 서적이 하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이다(The God Delusion·이한음 옮김·김영사).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신의 존재는 단지 가설일 뿐'이라는 주장을 수많은 역사적 실례들을 들며 매우 논리적으로 펼쳐 보인다. 나 같은 신앙인에게도 흥미롭게 읽혀지는 책이며, 보는 눈에 따라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신앙인의 관점에서 논박의 여지는 무한하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의 목적은 그것에 있지 않으므로 그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되, 철학적 신념으로 무장한 무신론자로서 찰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철저한 추종자이자 지지자인 도킨스가 책의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말에는 일단 동의한다.

맞는 말이다. 신은 만들어진 존재다. 하지만 그 자체로서 신은 존재하며, 그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만들어지게 했다. 또한 그것은 오늘도 끊임없이 신의 의지로 진행되며, 무한한 생명력으로 존재한다.

도킨스는 그 어떤 논리로도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신―초월적 존재의 '부재(不在)'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유한한 생명 안에 이미 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사실 무신론이라는 것은 신의 존재로 말미암은 논리이며, '역설'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응석'일 뿐이다.

올 한 해도 어느덧 11월로 접어들었다. 11월은 만추의 계절이며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자연은 만물의 영장이며 지각을 가진 동물인 인간에게 교사(敎師)의 역할도 한다. 자연의 변화는 그대로 신의 섭리를 표징하며, 갖가지 방법과 메시지로 자신을 드러내는 신의 거룩하고 준엄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인간은 11월의 우수 속에서 좀더 인생 무상을 체감하기도 하고, 그 덧없음 속에서 인생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반추하기도 한다. 막연하게 인생 무상을 느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덧없음 속에서 허무의 이치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마음은 얼마나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것인가!

하지만 노년의 세월 속에서도 황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종교적 성찰을 얻지 못하는 이는 불행하다. 거기에는 남루한 노추(老醜)만이 있기 십상이다.

천주교회에서 매년 11월은 '위령의 달'이다. 세상 떠난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달이다. 천주교회에서 한 해가 기울어 가는 시기이며 세상의 덧없음을 반추하는 시기인 11월을 '위령성월(慰靈聖月)'로 정한 것은 적절하고도 의미 깊다.

나 역시 해마다 11월에는 세월의 질감 속에서 먼저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많이 기도한다. 모든 조상들을 위한 미사와 최근에 이승을 하직한 친척이나 친지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다. 지난 설날과 추석에 '합동위령미사'를 지냈고, 선친의 경우 생신과 기일에 위령미사를 지냈지만, 11월 위령의 달(특히 2일 '위령의 날')에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한다.

선친을 제외하고 내 조상님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을 모르고 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분들이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 지옥에 갔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인간의 기본적인 '경천사상(敬天思想)'과 도덕률을 마음에 지니고 이승을 살았을 그들은 저승의 영혼을 정화(淨化)하는 곳에 머물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 그들이 어서 영혼을 정화하여 하느님 나라에 오를 수 있도록, 나는 후손의 도리와 의무에도 최선을 다한다.

내 조상님들은 저승의 그곳에서 오랜 시간 '통공(通功)의 은덕'을 기다렸을 것으로 믿는다. 다시 말해 이승과 저승의 공이 서로 통하는 그 통공의 은덕을 하느님께 청원하는 후손이 나타나기를 목마르게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지낼 때마다 늘 그것을 생각한다. 내 조상들이 저 세상에서 오늘의 이승의 후손 덕을 보리라는 생각을 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천주교회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모든 죽은 이들의 구원을 청원하는 기도를 하기도 한다. 사제의 그 기도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무한한 감동을 얻는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믿지 않고 죽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극치임을 깨닫곤 한다.

나는 지난 8월 15일 색다른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개신교의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영혼을 위한 미사였다.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모두 곧바로 천국에 간다고 믿기에,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는 아예 없는 것을 잘 알기 까닭이었다. 장모님과 지난 연초에 이승을 떠난 큰처남 댁 등, 내가 챙겨줘야 할 개신교 신자 영혼들이 많지만, 목회자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기는 처음이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내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타종교를 신봉했던 사람들까지, 이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희망하고 추구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고귀한 은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1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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