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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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2 조회수1,351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2일 위령의 날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Mt.5.3)
 
제1독서 욥 19,1.23-27ㄴ
제2독서 로마서 5,5-11
복음 마태오 5,1-12ㄴ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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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 아버님께 들었던 이야기 하나를 전해 드립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시는데, 친구 분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서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젊었을 때 체조 선수로 뛰셔서 그런지 몸도 아주 날렵하고 건강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나는 너무 건강해서 백 살까지 살 거야.”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신 날, 그것도 각자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헤어진 지 10분도 안되어서 친구 분은 교통사고로 아쉽게 주님의 집으로 가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집으로 가시는 친구를 향해서 “잘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가 될 지는 정말로 몰랐다고 하시네요.

스스로 건강을 자신 있어 하시는 분들이 있지요. 하지만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곁으로 갈 시간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성경에서도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대학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3일 뒤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시겠어요?

가족과 함께 있겠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여행을 가겠다. 내가 그동안 미워하고 적대시했던 사람들과 화해를 하겠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하겠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겠다.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일기를 쓴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들이 3일 뒤에 죽을 것을 대비해서 해야 할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소망은 뜻밖에도 다들 평범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학생들의 말이 끝나자, 교수님께서는 칠판에다가 이렇게 적으셨다고 합니다.

“Do It Now.”(바로 지금 하라)

‘죽음이 눈앞에 닥칠 때까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그 모든 일을 실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즉, 우리 가톨릭교회가 죽음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면서 죽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죽음을 피해갈 수가 없기에, 죽음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지금 이 현재를 보다 더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제정된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 자신은 얼마나 죽음에 대한 준비로써, 주님께서 주신 이 현재라는 시간을 충실히 쓰고 있는가 라는 반성을 해 봅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죽을 지도 모르면서 왜 이렇게 미워하고 싸우고 단죄하면서 살아가는지, 또한 마지막 남은 시간에 해야 할 것들은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하지 못하고 뒤로만 미루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때입니다. 후회할 짓을 만들지 않는 내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후회할 짓을 하지 맙시다.





비상등을 켜야 하는 이유(대니얼 고틀립, ‘샘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이었다. 포트 워싱턴에서 강연을 마치고 차를 몰고 오는데, 다리와 허리에 경련이 점점 심해졌다. 게다가 필라델피아 인근에서 가장 위험하기로 소문난 슈일킬 고속도로와 블루 루트를 타야 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차는 휄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내가 운전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지만 경련이 일 때는 바깥 차선에 붙어서 제한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달린다. 그러면 뒤따라오는 운전자들이 짜증을 낸다. 상향등을 비추거나 내 차를 추월하며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공포의 블루 루트가 가까워지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난폭한 운전자들을 또 얼마나 봐야 할 지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했다. 깜빡깜빡 비상등을 켜고 악명 높은 고속도로를 시속 오십 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경적 소리도, 손가락질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비상등을 켜서 “난 힘든 상태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알려 준 것이다. 그리고 운전자들이 내 신호를 이해한 것이다. 때로 우리는 용감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 상황과 마주친다. 하지만 대게의 경우 강한 척, 용감한 척하지 않을 때 돌아오는 보상이 더 많다. 여리고 약한 사람이 자신의 비상등을 켜고 “제게 문제가 생겼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라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 훨씬 안전한 길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Not only is this so,
but we also rejoice in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reconciliation.
(Rom.5.11)
 
 
Gentle Longing [조용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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