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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완덕은 바로 행동(Action First!)하는 것이다."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2 조회수632 추천수6 반대(0) 신고

나는 바로 행동하는 사람!

나는 Mr. Action First !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영혼이 가난한 사람이고,

 

영혼이 가난한 사람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말한다.

 

성 프란치스코 같은 사람을 말한다.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가난한 마음 속에서 영원한 해방과 자유의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물질을 추구하고, 보다 더 많이 가질려고 허덕이는데,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이웃에게 더 주려고 하였다.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덜 가지면 덜 가질 수록

 

물질과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깨끗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그 깨끗한 영혼으로 온 우주를 포용한다.

 

이 세상 만민을 형제 자매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생명과 사물까지도 형제 자매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소유하려하기 보다

 

이웃과 나누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영혼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하느님의 섭리다.

 

영혼이 욕심으로 더러워진 사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는가?

 

영혼이 정화되어야만 갈 수 있다.

 

영혼이 깨끗하게 되어야 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영혼을 깨끗하게 할 것인가?

 

예수님께 청한 문둥병자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간절히 청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해 주십사고 간절히 청해야 한다.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가 하늘나라에 닿을 때,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으로

 

기적과 치유의 힘을 뻗치신다. 당신 성혈로 우리를 정화 시키신다.

 

 

핵심은 예수님의 측은지심이다.

 

 

불쌍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

 

 

죄 중에서 헤매는 잃어버린 양과 탕자를 보살피는 마음.

 

 

죽은 나자로를 보고 우는 동생 마리아와 마르타의 마음과 함께

 

안타까워 우는 마음.

 

 

각종 질병과 온갖 죄 중에 헤매는 죄인들이

 

바로 예수님 당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이고

 

죄에서 해방시키고

 

고통과 지옥에서 구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다가가는 바로 그 마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까지 당신을 죽이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라는 바로 그 마음.

 

 

부활하신 후 도마에게 당신의 상처를 보여 주면서 만져보아라고 하시는 그 마음.

 

 

대부분의 제자들이 배반 할 것을 미리 아시고도,

 

살기위해 도망가지않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시면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면서 밤새 기도하시던 바로 그 마음. .......

 

 

그 모든 마음들의 바탕에는 바로 죄인을 안타까워하고

 

측은히 여기시는 측은지심이 있었으니....

 

이 측은지심이야 말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사실 생로병사의 우리 일생은 삶 그 자체가 측은지심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더욱 가지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이 안스럽지 않은가? 

 

그 자체가 측은지심을 자아낸다.

 

 

이 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모두에게 무소유의 순간이다.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 무소유다.

 

자신의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안되는 것이다.

 

자신의 재물을 웅켜지려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왜 우리는 무소유로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가?

 

왜 사랑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해

 

그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후회하는가?

 

인생을 그렇게 아둥 바둥 살아온 것을 그 때 가서야 후회하는가?

 

평소에 인생을 좀더 너그럽게, 좀더 자비롭게 살지 못한 것을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후회하는가?

 

무소유의 마지막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왜 평소에는 무소유의 삶을 살지 못하는가?

 

어차피 무소유의 길로 간다면 지금부터 그 길에 들어서면 어떻겠는가?

 

지금부터 무소유의 길로 들어선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그 얼마나 자유로울까?

 

소유의 사회 구조에 억압된 우리의 영혼이

 

자유와 해방을 맛보고 우리 이웃에게도

 

무소유의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전할 수 있을 텐데...

 

 

우리 마음이 무소유를 향할 때 이를 기특히 여기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훨씬 많은

 

놀라운 선물을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선물로 이웃에게 베풀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무소유의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는 삶에서 오는 기쁨은 그렇게 살아 본 사람만이 알게되는 기쁨이다.

 

천상의 기쁨이다.

 

빛의 기쁨이다.

 

이 세상 물질에서 오는 만족과는 전혀 다른 무한한 자유와 해방이 함께하는 기쁨이다.

 

 

만일, 우리가 평소에도 무소유의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리고 모든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진다면,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무소유가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그래서 언제나 평소에 나누면

 

참된 천상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을 안다면

 

그래서 늘 빵을 나누는 삶을 산다면,

 

예수님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예수님과 함께  늘 맑은 영혼, 늘 나누는 영혼이 되지 않을까? 

 

늘 나누다가 하느님이 부르시면 가는 깨끗한 영혼, 빛의 영혼이 되지 않을까?

 

우리 삶에도 영적인 맑은  치유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평소에 무소유와 측은지심의 마음을 가지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은 아주 쉬운 일이다.

 

우선, 욕심이 얼마나 고통을 나에게 주었는가를 잘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나에게 자비로운 마음, 무소유의 마음이 있을 때 그 얼마나 자유로웠는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한다. 이웃들도 내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때, 나에게 얼마나

 

호의적으로 잘 대해 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비로운 마음에서 오는 기쁨이 욕심에서 오는 고통보다

 

얼마나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가를 잘 기억해야 한다.

 

자비로운 마음의 출발점은 나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우주 생명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된다.

 

나에게 측은지심이 있을 때

 

내가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이 세상의 죽어가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얼마나

 

안 쓰러워하고 보살피려 하였는가? 를 생각해 보면 된다.

 

 

무소유와 측은지심을 가졌을 때 우리가

 

자유와 바다같은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바로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가지지 않으려하거나, 덜 가지려 하고,

 

이웃들의 부족함과 죄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 속에 

 

자유와 우주같은 크나 큰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행동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럴때 우리 영혼은 욕심에서 벗어나

 

가난한 마음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껴안은 성모님의 마음, 

 

피에타 성모님의 마음,

 

바로 이것이 측은지심의 마음이다.

 

 바로 하느님의 자비심이다. 이로 인해서 우리가 깨끗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이 무소유와 측은지심을 가지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우리 영혼이 예수님의 성심을 만나고 이웃 사랑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심의 메시지에서 영혼이 완덕으로 가장 빨리 나아가는 길이

 

바로 행동하는 것이라 했으니, 우리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살아야 할 것이다.

 

측은지심과 무소유와 베품의 삶을 행동으로 살아서 깨끗한 영혼으로 하늘나라에

 

가야 할 것이다.

 

무소유도 행동으로, 측은지심도 행동으로, 베품도 행동으로, 나눔도

 

행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영성 신학 박사이신 

박 홍 루가신부님(전 서강대 총장 신부님/ 현재 서강대 이사장 신부님)은 

언제나 Action First !를 강조 하셨다.

 

이 말을 기억해 두는 것이 무척 도움이 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으로 지치고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사랑의 마음으로 즉시 행동하는 것이 완덕으로 나가는 지름길이라는

 

메시지는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일상 생활 속에서.....

 

물론 우리는 인생의 모든 선택을 신중하게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이 너무 많아 이것 저것 잡념과 갈등으로 혼란 속에서, 또 많은

 

쓸데없는  욕심 속에서 헤매이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완덕으로 나아가는 즉시 행동"은 한줄기 빛의 역할을 한다. 

 

복잡하게 생을 사는 우리에게 Action First 는 시원한 생명수의 역할을 한다.

 

즉시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하루 하루가 더해지면서

 

우리를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고

 

날이 갈수록 더 영롱한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즉시 사랑으로 행동하면서, 또 이런 하루 하루가 쌓이면서, 

 

날이 갈수록 우리도 성인들을 닮아 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완덕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도 성인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도 빛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 하느님 아버지가 빛이시기 때문이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빛이신 성령님께서 늘 우리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빛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도 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하늘나라를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도 당신들을 따라서 빛의 삶을 살아 갈 것을

 

맹세해야 한다.

 

우리가 빛으로 살면서, 가난한 마음으로, 덜 가지는 마음으로,

 

자유와 해방의 맑은 마음으로,

 

이웃과  하루 하루 나누어 갈때,

 

사랑을 즉시 행동으로 살아 나갈 때,

 

우리의 이웃에대한 측은지심,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도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 사랑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랑의 선순환, 기쁨의선순환에서 오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이 갈수록 정화되고, 깨끗하게 되어,

 

가난한 마음에 사랑이 충만하게 되어 행복해지는 비결인 것이다.

 

이럴 때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우리 영혼을

 

더욱 자비로운 영혼, 더욱 맑은 영혼, 더욱 깨끗한 영혼,

 

점점더 완덕의 영혼으로 다듬어 가실 것이다.

 

지금도 이웃과 나누려는 가난한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를 성인의 길로 초대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즉시  사랑을 행동하라!"

 

"늘 행동을 생각하고, 곧 바로, 즉시 나눔을 실천하라!"

"사랑의 완덕은 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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