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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끝자리’로서의 제자리" - 2007.11.3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3 조회수427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1.3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로마11,1ㄴ-2ㄱ.11-12.25-29 루카14,1.7-11

                                                        
 
 
‘끝자리’로서의 제자리
 


자리에 대한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싸움들, 잘 들여다보면 결국은 자리싸움입니다.
나라들 간의 전쟁도 대부분은 더 큰 자리,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위한 전쟁입니다.
 
높은 자리, 윗자리, 좋은 자리는 제한되어 있기에
갈수록 경쟁과 싸움은 치열할 수뿐이 없고,
이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자리에 위치해 있는지요?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요?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측면에 주목합니다.
사실 성지가 있어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머물면 그 어디나 성지가 됩니다.
 
유명한 어느 지관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명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착하게 살던 사람이 묻히면 어디나 명당이 되고,
악하게 살던 사람이 묻히면 명당도 나쁜 땅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은 그 높은 하늘 자리를 마다하시고 사람이 되시어
땅위의 낮은 자리에 자리 잡으셨습니다.
 
사막의 성자라 일컫는 샤를로 후꼬가 평생 추구한 것은
아무도 탐내지 않는 나자렛 예수님의 버려진 끝자리였습니다.
바로 그 끝자리에 우리의 종이 되어 섬기러 오신 주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옛 수도 선배들 역시 좋은 자리를 찾아 수도원을 세운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땅, 황무지를 찾아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수도 선배들이 자리 잡는 곳마다 황야는 옥토의 낙원이 되었고,
바로 이의 결과가 오늘의 유럽입니다.

외적 자리 ‘어디에’ 우선하는 게 ‘누군가’의 사람입니다.
하느님 안에 자리 잡은 하느님의 사람이 될 때
외적 자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리를 보는 게 아니라 사람됨을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전 봄철에 제비꽃을 보며 써놓은 글이 생각납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 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없다.”

하느님의 사람들은 절대로 자리 탓, 남 탓하지 않습니다.
 
어디든 뿌리 내려 하늘사랑 꽃피어냅니다.
또 이들은 생래적으로 끝자리를 선호합니다.
경쟁과 싸움에서 떠나 온전히 하느님 안에 숨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과 직결된 자리이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는지요?
 
오늘 날의 세상이 윗자리, 좋은 자리를 위한 경쟁 사회라면
수도원은 끝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사회여야 맞는 겁니다.
 
옛 바실리오 수도 공동체 수도자들은
성당에서든 식탁에서든 끝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히 경쟁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끝자리를 차지하기위해 애쓰는 수도 공동체라면 평화와 사랑이 넘칠 것입니다.
사실 마음만 겸손히 낮추면 곳곳에 널려 있는 끝자리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누가 너희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진정 지혜롭고 겸손한, 하느님만으로 만족한 이들은 끝자리를 선호합니다.
이들이 자리 잡은 끝자리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빛나는 끝자리가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내 고유의 끝자리는 전혀 외적 자리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로 1독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리가 이를 암시합니다.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끝자리로서의 고유의 제자리,
그 은사와 소명은 결코 철회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 안에서 끝자리로서의 내 고유의 제자리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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