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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0) 퇴학 면한 59.5 / 김충수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7 조회수728 추천수6 반대(0) 신고
 
 
 
 
 
내가 신학교에 들어간 것은 중하교 1학년 때였는데  정말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친구들하고 떠들고 노는데 여념이 없었다.
 
은행나무 밑에서 은행을 주워 발로 뭉개고 손으로 비비고 이빨로 까서 먹느라고  수업시간에 여러번 늦기도 했다.
교실에서는 틈만 나면 멀쩡한 책상에 펜촉을 꽂아 열심히 비벼서 구멍을 냈다.
 
그러다보니 시험성적은 낙제점수를 겨우 면할 정도였는데 중학교 1학년 학기말 시험에서 평균성적이 59.5가 나와 교장실에 불려가 퇴학처분을 받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강에 빠져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생일대의 악몽이었다.
 
그런데 교장신부님이 한참이나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너 이번 방학 때 잘 생각해서 정말 신부가 되고 싶으면 숙제를 열심히 해 가지고 와!"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퇴학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셔서 죽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말씀이 바뀌신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구원의 희소식이었던 것이다.
 
 
아마 자캐오도 예수님의 구원 선포를 들었을 때 이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키가 작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세관장 자캐오는 속된 말로 밥맛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동족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정해진 양보다 조금 더 걷어 자기 배를 채우는 세리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누구 못지않은 부자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은 언제나 쓸쓸했고 편치가 않았다.
 
 
어느 날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설레고 꼭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수를 둘러싼 군중이 구름  떼 같았다.
어렸을 때 자주 올라가 놀던 뽕나무 생각이 났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를 기다렸다.
 
드디어 예수님이 가까이 왔다.
큰소리로 예수님을 부르려고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데 예수님이 먼저 손짓하여 부르는 것이었다.
 
"자캐오야, 내려 오너라. 오늘 저녁은 네 집에 머물고 싶다."
 
여기서 자캐오의 인생에 대역전극이 벌어진 것이다.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던 마음과 예수님의 죄인에 대한 사랑이 마주친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받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캐오처럼,
퇴학을 면해준다는 교장신부님의 말씀을 들은 나처럼,
우리는 늘 이런 극적인 순간이 어디 내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던가!
 
오늘 자캐오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의 큰 은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글 : 서울 여의도 성당 : 김충수 주임신부
 
 
                                                                        ㅡ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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