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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총피정<31 / 마지막 회> 기도의 즐거움(2)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7 조회수1,589 추천수15 반대(0) 신고

 

 

기도의 즐거움(2)



   여섯째로는 가정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이나 셋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당신 자신이 바로 거기에 계시겠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믿는다고 하면서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믿는 집에서 기도 소리가 없고 믿는 집에서 함께 부르는 성가 소리가 없다면 그 집은 믿는 집이 아닙니다. 믿는 집에서는 어쩌니 해도, 기도 소기가 창밖으로 흘러 나가야 하며 또 성가 소리가 대문 밖으로 퍼져 나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기도가 아니면 가정의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며 세상을 또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피정할 때의 일입니다. 남자들이 한 백 명 모였기에 가정에서 함께 기도하는 분은 손을 들라고 하자 딱 두 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중에 한 분은 가끔 한다는 것이며, 오직 한 분만이 매일 부인과 자녀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본당 신자들뿐만 아니라 아마 한국의 모든 천주교 신자들의 가정이 바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당 사목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회장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꼭 한 분만 가정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가정 기도의 필요성도 모르고 기도는 그냥 부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회장의 직책이 뭡니까?


   제가 시골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참 바쁜 농번기였습니다. 그때는 전화도 없을 땐데 갑자기 구역장 집에 볼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늦은 밤에 찾아갔는데 글쎄 그 시간에 그 집에서 성가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가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멜로디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가 뒤에 그 집 식구들이 저녁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구가 열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모여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집이 모내기 하느라고 바빠서 정신들이 없었습니다. 기도는

고사하고 주일에 미사 참례할 엄두도 내지 않는 가정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미사를 궐하는 일은 없으며 기도 마저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시간만 되면 모두 모여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게 바로 멋지게 사는 것입니다. 돈 가지고 멋지게 사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나 지식만 가지고 멋지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도 안에서 멋지고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병이 있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멋지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집에서 시골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 대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가 대학을 나와 취직 시험을 보는데, 면접 때 세상에서누구를 가장 존경하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때 자기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합격시켜 주더랍니다. 자녀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보면 "돈, 돈!" 하고 "공부, 공부!" 하지만, 결국 돈 있는 자들이 더 죄를 지으며 배운 사람들이 더 불효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세상을 산다면 그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대는 아침기도 저녁기도가 좀 길었습니다. 아침기도에는 예

수 성심 호칭 기도 들어가고 저녁기도에는 성모 호칭 기도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바치려면 15분 이상 걸렸으며 또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묵주기도까지 바치게 됩니다. 그것이 아침에는 쉬운데 저녁 잠자기 전에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린것이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에 기도를 하면서도 좁니다. 그래도 우리

는 어렸을 때부터 기도문을 달달 외웠습니다. 그러니까 졸면서도 기도문 외


우는 것은 저절로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졸 때 뒤에 앉아 계신 부모님이호

통을 치십니다. 심하게는 벼개를 던지시며 "왜 기도하다 조느냐?" 하고 나무라십니다. 그러면 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기도를 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것이 참으로 싫었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가 원수 같았고 나중에 크면 기도를 안 바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혼자 자립하게 되니 기도를 안 하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면 불안해 잠을 못 잡니다.


   기도가 무서워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부모는 기도의 습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줘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쳐 줄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특히 좋은 습관은 인내심을 가지고 길러 줘야 합니다. 삶의 중요한 지혜가 거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젠가 미국에 사는 저의 고모께서 어린 딸과 함께 시골 본당에 있는 저를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고모가 저보다 나이가 적었기 때문에 그처럼 어린 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밤에 약간 늦게까지 얘기를 하는데, 아이가 졸리다고 했습니다.


   이때 고모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 방으로 가시더니 성가를 부르면서 저녁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잘 때가지 성경얘기를 해 주면서 편하게 자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고모의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흐뭇했습니다. 과연 공소 회장님의 따님답다고 나중에 그런 말도 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 공소 회장을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의 어머니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녀를 돌보는 것인데 특히 아무리 바빠도 잠자리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해 주고 또 성경 얘기를 해 주는 것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엄마의 최고 본분으로 생각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의 못을 박아 주고 또 세상을 살아가는 참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가정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내 아내와 내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그 가정야말로 세상에서 갖아 소중하고 아름다운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 기도가 없다면 그 가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무시 받는 가정이고 스스로 천대받는 가정입니다.


   일곱째로 성체조배를 하십시오. 시간만 있으면 누구든지 성체조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좀 어폐 있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주님이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며 도 우리와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어떤 때는 정말 우리를 그리워하십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주님 대전에 나가 무릎을 끓고 두 손을 모아 그분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할 때도 드뭅니다. 삶의 기쁨이 거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저는 유행가를 좋아 삽니다. 어떤 때는 신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지도록 신나게 부를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니 '그대' 니 하는 말들이 저에게는 참으로 좋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이 모두 주님과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송창식의 '우리는'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2절에 보면,


   "우리는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 잡은 손끝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연인."


   가사가 참 좋습니다.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너무도 잘 표현한 것 같아 가수 송창식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 가수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젊은 연인들의 관계를 그린 것이지만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참으로

실감나게 잘 어울립니다.


   다시 한 번 가사를 음미하겠습니다.


   우리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고,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으며,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바람 부는 벌판에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으며,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습니다. 느낌만으로 충분하며 생각만으로도 가득 채워집니다.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작아도 그 작은 것을 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동원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며 권력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으로 채워지며 하느님으로 채워집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를 '영혼의 숨결'로 비유했습니다. 좋은 표현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숨을 쉬게 되어 있습니다. 숨을 쉬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생명입니다. 숨을 쉼으로써 생명체가 성장하고 생명을 발전시킵니다. 따라서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며 숨을 쉰다는 것은 또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멀쩡한 사람에게 "제발, 숨 좀 쉬게." 하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숨 쉬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굽니까? 바로

죽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은 옆에서 숨 좀 쉬라고 소리를 쳐도 안 됩니다. 그러고는 죽습니다.


   영혼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있다는 것은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대화가 없다면 그는 자녀가 아닙니다. 대화를 안 하는 그 자체로 아버지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죽어 가는 사람, 영혼이 죽은 사람은 기도가 안 됩니다.


   여러분, 기도의 맛을 들이십시오. 기도는 노동이 아니며, 어려운 수학 문제도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기도 안에서 참 즐거움을 만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온갖 보배를 거기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이 찾으십니다. 특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아멘.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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