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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자의 삶" - 2007.11.7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7 조회수481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찰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1.7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로마13,8-10 루카14,25-33

                                                              
 
"제자의 삶"
 


공동체내에서의 개인이요, 함께 안에서의 홀로입니다.

어느 공동체든 좌우간 공동체 안에 몸담고 사는 개인들입니다.
공동체를 떠난 개인은, ‘함께’가 없는 홀로는 애당초 불가능하며,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말씀은 제자 공동체내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 홀로 선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지,
홀로 서지 못한 이들이 모여서 공동체가 아닙니다.
 
개인들이 하느님 향해 홀로 서지 못하면 공동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좋은 공동체내의 좋은 개인들이기보다는 좋은 개인들이 모여 좋은 공동체입니다.
좋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지요.
나무숲의 이치가 좋은 비유가 됩니다.
 
하늘 향해 쭉쭉 뻗은 각 나무들을 잘 들여다보면
각각 제자리에 뿌리를 두고 머리들은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으면서
서로 간에는 평행의 공간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간혹 겹치기도 하고 사이를 뚫고 커가지만 모두가 하늘을 향합니다.
 
바로 주님의 제자로서의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일편단심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은 역시 오늘 복음에서 이점을 분명히 합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라는 말마디처럼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액면 그대로 이웃을 미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도, 심지어는 자신도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첫 자리에 놓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중심에 주님을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소중한 나도
절대로 첫 자리에 사랑의 중심에 놓아선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래야 이웃들에게도 자유롭게 하는 초연한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도 주님 사랑이 우선할 때 가능합니다.
 
첫 자리 사랑에, 사랑의 중심에 이웃이나 자기를 놓았다가
맹목적 눈먼 집착의 사랑으로 낭패와 좌절, 혼란을 겪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급기야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증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지 않습니까?
하여 베네딕도 성인도 규칙서에서 그의 수도자들에게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고 신신당부 하십니다.
 
모두가 우선적으로 주님을 열렬히 사랑할 때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 일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평생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의 제자입니다.
 
이점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히 못 박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라는 말마디가 암시하듯
이 말씀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이 제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제 각기 삶의 자리는 달라도 같은 주님을 따르기에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같은 주님을 따라도 주님을 따르는 길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자기 고유의 길에, 자기 고유의 십자가인 책임감에 운명의 짐입니다.
 
피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내 십자가의 길이요 짐입니다.
 
누구와 비교하여 優劣을, 好惡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앞서 가시는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며
내 운명의 십자가를 뜨겁게 사랑하며 지고 갈 때 부활의 구원 문이 활짝 열립니다.

셋째, 무소유, 무집착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이 기꺼이 내 십자가를 지게하고,
기꺼이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게 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좀 과격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은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소유의 위력이 얼마나 큰 지 짐작하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내의 대부분 사람들이 소유에 노예 되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소유냐, 존재냐?’에서 주님은 과감하게 존재를 택하라 하십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릴 때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의 삶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많은 성인들이 주님 사랑에 가득 차
글자 그대로 무소유의 이상적 삶을 살았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생각난 게 관리인의 삶이었습니다.
 
저희 수도원은 외적으로 큰 부자처럼 보입니다만 내용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유주는 하느님이시고 저희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집’의 관리인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집 수도원이기에 하느님의 자녀들인 신자들에게 늘 개방되어있어
마치 모든 신자들의 집 같기도 합니다.
 
하여 고향집을 찾듯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집, 수도원을 찾습니다.
이런 수도원의 모습에서 무소유의 정신, 무집착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소유하되 소유주는 하느님으로 알아
겸손히 있어도 없는 듯 살면서 소유의 관리에 충실하고,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며
하느님의 뜻에 따른 무욕의 삶, 그대로 무소유의 삶이나 진배없습니다.
 
부자였던 욥도 모든 것을 잃어 무가 됐을 때
다음 고백을 보아 그가 얼마나 관리인의 사명에 충실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셔 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억지로, 의무로 십자가를 지고 소유를 포기하기로 하면 너무 힘듭니다.

주님을 우선적으로 열렬히 사랑할 때
그 사랑의 힘이 저절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게 하고, 무집착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익어 떨어지는 가을 열매들처럼,
사람으로부터의 이탈,
자기로부터의 이탈,
소유로부터의 이탈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하여 말 그대로 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유와 생명의 구원에 이르는 삶은 이 제자의 삶 하나 뿐이 없습니다.
 
매일의 이 은혜로운 미사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받는 한량없는 사랑의 힘이
우리 모두에게 제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하고,
무집착의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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