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 - 배광하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1 조회수867 추천수10 반대(0) 신고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 - 루카20, 27-38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부활과 영원한 생명 >

사제가 되어 아주 가끔은 대학에서 얕은 철학을 교양으로 공부하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청년 교우들에게서 하느님 존재와 부활에 대한 신앙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면담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제 자신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변화되기 위하여, 혹은 세상의 자유와 인간 존엄을 위하여 자신의 생을 투신하다 가슴 아프게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또는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죽은 인류의 모든 슬픈 죽음을 생각해 보게.

멀게는 끔찍한 재앙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살육에서, 우리 조국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 4.19, 5.16,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숨진 슬픈 영혼에게 하느님이 계시지 않고 부활과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죽음은 너무나 억울한 죽음이 될 걸세.

그분들을 위하여도 하느님은 계셔야 하고 부활과 내세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네. 그리고 만일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고 부활과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대 혼란에 빠지게 될 걸세.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과연 누가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투신하겠는가? 그야말로 한번 세상에 태어난 몸, 질펀하게 살다가 가려고 할걸세. 그때에는 인간이 더욱 비참해 지게 된다네”.

하느님 존재에 대하여 인간은 세 가지 입장을 취해온 듯합니다. 계신다는 입장과 계시지 않는다는 입장,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도적 입장이 그것입니다.

부정의 입장에는 다분히 인간 세상의 모순적인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회의, 예를 들면 무죄한 어린이들의 학살이나 죽음, 악인들의 번성과 선한 이들의 고통을 끄집어냅니다.

또한 종교로 인한 간섭에 염증을 느끼는 경우와 종교인들이 저지르는 만행 때문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경향이 큽니다. 무신론자들의 주장 뒤에는 우리 신앙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진정 우리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가슴을 치며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하나 되어 사회 구조적인 악과 모순에 맞서 싸운다면 하느님을 거부하는 이유들은 거의 없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신앙인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악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더 나아질 것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나아가 무신론자들은 이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자신들을 얼마나 희생하며 투신하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실천의 희생은 등한히 한 채 사변의 껍데기를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양 우월감에 가득 차, 신앙의 이름아래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인류를 위한 사랑에 생을 투신하는 고귀한 이들을 조롱하며 허황된 망상의 이론에 자만한 삶이 아니었는지 진정 묻고 싶습니다.

오늘 온갖 고통과 박해의 죽음 아래 처형되는 일곱 형제를 소개하며 마카베오 하권의 저자는 그들의 입을 통하여 용감한 부활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 7, 9).


산 이들의 하느님

우리는 자주 죽어야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무얼 잘했다고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진정 그 나라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 21).

그리고 그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심을 오늘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이럴 때 우리의 지상 삶의 중요성과 이 지상에서의 희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승에서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한 이들이 어찌 저승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살아있는 지금 이곳에서 천국을 만들며, 천국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범했던 잘못은 천국과 하느님을 죽은 이들의 전유물인양 전했던 것입니다. 살아있는 이 지상에서 하느님을 만나려 하지 않았고, 이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멀리 계시는 분, 혹은 계시지 않는 분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천국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해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희생하며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 질 수 있고, 내 마음에 가슴 뿌듯함이 남아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며, 그곳에 산 이들을 위한 하느님께서 존재하십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도 하느님과 천국을 함께 사는 것입니다.

 

- 배광하 신부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