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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신부님]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1 조회수85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 다해
 
 
 
 He is not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to him all are alive.
(Lk.20.38)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7,1-2.9-14
제2독서 테살로니카 2서 2,16─3,5
복음 루카 20,27-38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저는 어제 학생들에게 과자를 한 가득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자의 종류가 다 똑같아요. ‘빼빼로’라고 초콜릿이 발라져 있는 기다란 스틱형의 과자이지요. 글쎄 오늘이 11월 11일. 빼빼로 같이 생긴 숫자 네 개가 나오기에 빼빼로 데이라고 한답니다. 사실 빼빼로 데이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1월 14일은 다이어리데이,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 4월 14일은 블랙데이, 5월 14일은 로즈데이, 6월 14일은 키스데이, 7월 14일은 실버데이, 8월 14일은 그린데이, 9월 14일 포토데이, 10월 4일은 천사데이, 10월 14일은 와인데이, 11월 11일은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빼빼로데이, 11월 14일은 무비데이라고 합니다.

상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념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날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실 위에 언급된 날 자체로는 그러한 의미를 담길만한 특별한 날이 아니지요. 단지 사람들이 의미를 붙이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동참을 하다 보니 이렇게 특별한 날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루하루를 스스로 이렇게 특별한 날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즉, 매일의 순간에 의미를 붙이고 산다면 내게 있어서는 매일의 삶이 특별한 날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의미를 붙이는 과정 안에서 우리의 삶 안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의 숨결을 느끼게 됨으로 인해, 주님을 더욱 더 알게 되고 보이지 않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삶이 더욱 더 특별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 특별하지 않은 날이 있을까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날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특별한 날들을 소홀히 할까요? 과거에 연연하면서 후회하고 끊임없는 걱정으로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들. 그럼으로 인해서 내게 다가오는 이 현재라는 시간에 얼마나 충실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야기하십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이 말씀은 그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즉,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브라함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 이사악 시대에는 이사악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 야곱 시대에는 야곱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악 시대에 아브라함의 하느님이 아닌 것이며, 야곱 시대에 이사악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이라는 현재에 항상 충실한 분이시기에,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았을까요?

상술에 의한 특별한 날만 의미를 붙이지 말도록 합시다. 그보다는 지금이라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귀하고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처럼 이 현재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바로 그 순간, 특별한 날에 특별하게 살아가는 아주 행복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탐구하는 자세는 곧 경쟁력(김성오, ‘육일약국 갑시다’ 중에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똑같은 것을 봐도 그 속에서 숨은 원리를 상상하고 또 질문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생각하고 탐구하는 자세는,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저녁, 건너편 도로에 서서 불이 켜진 약국을 바라보았다. 작디작은 약국은 어둠이 내리자 더욱 한산해 눈에 띄지도 않았다. 가뜩이나 작은 약국,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잘 보여야 사람들이 인식할 것이 아닌가.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약국을 ‘아주 환하게’ 만들려고 마음먹었다. 당시 40와트 형광등 6개 정도면 충분히 약국을 밝힐 수 있으나 나는 일부러 25개의 형광등을 주문하고 설치했다.

“콧구멍만 한 약국에 뭐 볼 게 있다고 이리 많은 전구를 설치하시는교? 전기세 억수로 나올 텐데예.”

형광등을 설치하는 기사는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25개의 형광등이 그 좁은 천장에 간신히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대낮같이 환한 빛으로 약국은 멀리서도 별처럼 반짝였다. 행인들의 시선이 절로 약국으로 향했다. 이웃 가계와 차별성이 생긴 것이다. 손님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약사님요, 약국이 이리 훤하니 왠지 시원하게 낫게 해 줄 것 같습니다.”

한 달 후 지난달에 비래 전기요금이 20만 원이나 추가됐지만 밤이 깊을수록 약국은 더 눈에 띄었고, 손님들도 만족했다. 월 매출이 1백만 원 정도 증가했다. 20만 원의 투자로, 다섯 배의 이득을 본 것이다. 어느덧 육일약국은 마산 교방동의 밤을 밝혀 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Saint Martin and the Beggar

 

"The children of this age marry and remarry;
but those who are deemed worthy to attain to the coming age
and to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neither marry nor are given in marriage.
They can no longer die,
for they are like angels;
and they are the children of God
because they are the ones who will rise.
That the dead will rise

(Lk.20.34-35)
 
 

 Dream Come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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