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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3 조회수969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When you have done all you have been commanded, say,
‘We are unprofitable servants;
we have done what we were obliged to do.’

(Lk.17.10)
 
제1독서 지혜서 2,23─3,9
복음 루카 17,7-10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어제 부모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부모님 집 근처에 있는 ‘진흙구이 오리 전문집’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곳 중의 한군데이거든요. 그리고 좋아하시는 이유는 맛도 좋지만, 그곳 종업원들이 연세 드신 분들에게 특별히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종업원들이 부모님께 말합니다.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저는 그냥 인사치례로 들었는데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요즘에 노인들에게 오랜만에 왔냐면서 반기는 곳이 어디 있냐?”

그리고 계산을 끝내고 갈 때에는 부모님께 또 오시라면서 ‘10,000원 할인 쿠폰’까지 드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모습에 부모님께서 이 집을 싫어하실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제가 그 주인에게 “어르신들에게 참 잘하시네요.”라고 말하자, 그 주인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선배님이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잘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점점 소외받고 있는 분들이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어른을 잘 모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 사회의 분위기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설 자리를 점점 줄어들게 합니다. 그러다보니 젊은이가 눈치 보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거꾸로 눈치를 보며, 어르신들이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그 가게를 어떻게 싫어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 가게가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가게가 많기에 이 가게가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가게를 나오면서 문득 주님께 대한 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기 보다는 나의 이익만을 먼저 추구하려는 모습을 취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어쩌다가 그 계명을 실천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어떻게든 티를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도 이렇게 행동한 자신에 대해서 어떤 특별한 보상이 내려지기를 은근히 기대하지요.

그러나 사랑의 계명 실천은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종처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지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상은 그저 주시는 선물인 것이지, 잘한데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봉사하는 자에게 하늘 나라가 약속된 것이지, 자신의 선행 하나 하나에 대해서 어떤 보상을 받으려는 자에게 하늘 나라는 멀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당장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이에 따라는 보상을 원하지 마십시오. 숨은 일도 지켜보시는 주님께서는 알아서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대가를 바라고 선행을 하지 마세요.




81년 동안 다닌 직장(‘좋은 생각’ 중에서)
 
지난해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퇴직 행사가 열렸다. 주인공은 지난 81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해 온 아사 윈스턴. 그날은 그의 100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100년 전 남부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버스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1920년대 미국에서 흑인인 그에게 그 꿈은 멀기만 했다.

그러다 열여덟 살 되던 해에 당시 퍼시픽전철이었던 로스랜젤레스 대중교통국에 입사할 수 있었다. 버스를 깨끗이 닦고 기름을 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그는 꿈을 이룬 듯 성실하게 일했다. 늘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출근했고,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았다.

아니, 딱 하루 병가를 낸 적이 있다. 그날은 1988년 어느 월요일, 지난 토요일에 아내 프랜시스를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그에게 직장은 네 아이를 키우고,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과 함께한 평생의 동반자였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세기의 일꾼’으로 표창했다. 한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몇 십 년 동안 신임을 받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열성적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모두가 놀랐다.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은 1997년 그가 담당하던 5구역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서 윈스턴 구역’이라 이름 붙여 줬다.

100세의 나이로 생일날 퇴직하는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버스 수리공인 나에게 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다니,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쉬지 않고 움직일 거예요. 내 나이에 앉아 버렸다가 못 일어서면 큰 일이니 말이오.”
 
 
 
 
 
 Comme Ce Jour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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