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6 조회수975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16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Whoever seeks to preser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it will save it.
(Lk.17.33)
 
제1독서 지혜서 13,1-9
복음 루카 17,26-37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어떤 가족이 성당에 가서 미사를 참석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대화를 나눕니다. 먼저 아버지가 말씀하시지요.

“아니, 오늘 신부의 강론이 그게 뭐야? 참 내……. 묵상을 하기는 한 건지 그게 강론 맞아? 다른 성당에 가보면 신부들이 강론도 잘하더구먼. 우리 성당은 왜 이렇게 형편없는 신부만 오는 거야?”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강론은 그렇다고 쳐요. 성가대는 왜 이렇게 성가를 못 부르는거에요? 연습도 하지 않았나봐요. 목소리도 맞지 않고……. 실수도 많이 하고……. 영 분심이 생겨서 그 자리에 있지를 못하겠더군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래요.

“아빠, 엄마! 그래도 천 원짜리 치고는 괜찮지 않아요?”

교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자기 자신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천 원 짜리 한 장뿐이라는 것을 꼬집어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해 봉헌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요?

어떤 분은 하느님께 헌 돈을 드릴 수가 없다면서 빳빳한 새 돈이 생길 때마다 따로 모아서 주일이면 그 돈을 봉헌한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서 어떤 분은 꼬깃꼬깃 접어서 마치 구걸하는 거지에게 돈을 주듯이 합니다. 그렇게 성의 없이 하느님 앞에 나오면서도 얼마나 많은 불평과 불만을 던지고 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한 말씀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으스스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말에 관한 말씀을 자주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두려워 떨면서 살라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하느님 무서운지를 알고 있으라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사람들의 회개를 이끌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하느님 앞으로 나오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분명히 오기는 하지만, 언제 올지를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하느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종말에 관한 말씀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똑같이 전해집니다. 이제는 제발 죄로 기울어지지 말라고, 이제는 제발 사람들에 대한 판단과 미움은 그만하라고, 이제는 제발 하느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이제는 제발 하느님께 몸과 마음으로 진실된 봉헌을 하라고…….

이런 모습이 종말을 가장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준비 상태는 과연 어떤가요? 아직 준비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하세요. 더 늦기 전에…….



주님께 봉헌할 것을 정성껏 준비하세요. 영적인 것이든, 물적인 것이든…….




나무와의 대화(최일도, ‘마음열기’ 중에서)
 
몇 년 전, 한 지인의 별장이 수몰될 상황에 놓여 몇 십 년 정성스레 가꾼 나무들을 이리저리 옮겨야 했다. 부자들이 수천만 원을 준다며 단풍나무를 탐냈지만, 그는 나무를 잘 가꾸어 달라며 내게 선물했고, 나는 묵안리수련원 한쪽에 그 단풍나무를 고이 롬겨 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뭇가지가 다 잘려 있었다. 누군가 나무는 가지를 잘라 주어야 잘 자란다며 싹둑 잘라 놓은 것이었다. 마침 나무를 선물해 준 사람과 함께였는데, 그는 나무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생전에는 나무의 잘생긴 원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다음 해 봄이 되어도 단풍나무에선 더 이상 싹이 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을 많이 걸어 주세요……. 가지를 잘린 것이 충격인 모양입니다. 부탁 드려요.”

묵안리에 갈 때마다 나는 나무를 붙잡고 기도했다. “기운내렴. 상심이 크겠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힘을 비축해서 내년에는 꼭 싹을 튀워라.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어느 날 문득 나무가 난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주신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보다는 더 들었을 걸요.”

다음 날부터 내 말투가 바뀌었다.

“나무님, 힘내십시오. 제가 열심히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1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신기하게도 단풍나무에 새싹이 돋아났다. 그제야 나는 잘린 나무를 보고 눈물 흘리던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무를 사랑하여 늘 말을 건네고, 나무를 위해 기도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나무와의 공감이었다. 그 뒤 나는 자연의 모든 피조물에 말을 건넬 수 있는 마음이 되살아났다. 말이 통하는 세상은 보는 것마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I tell you, on that night there will be two people in one bed;
one will be taken, the other left.
And there will be two women grinding meal together;
one will be taken, the other left.”
(Lk.34-35)
 
 
  Timeles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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