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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혹의 고릴 끈는 법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6 조회수1,110 추천수12 반대(0) 신고
 
 
유혹의 고릴 끊는 법 

  가톨릭 사람들은 재의 수요일이오면 이마에 재를 받으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결심을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어도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그 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이나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롭게 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도 우리 자신들이 오류에 빠져 그 기회를 찾지 못한다면 참으로 주님께서는 슬프지 않겠는가? 이 부분을 오늘 우리는 묵상해 보자.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이기에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나온 이상 유혹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그 대단하신 하느님의 아들도 인간으로 온 이상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천상에 계셨던 하느님의 아들에게 과연 유혹이라는 것이 있었겠는가? 물론 유한 세상에 사는 인간이 무한 세상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 하나는 인간의 세계와 초월의 세계는 분명히 다르기에 천상의 세계에 계신 하느님껜 유혹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 유혹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세상에 나온 이상 어느 누구도 유혹으로부터 자만할 수 있는 이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예수님도 유혹을 마귀로부터 받고 계시질 않는가? 어떤 유혹인가?
 
인간에겐 어는 정도의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식욕, 지배욕, 지식욕에 대해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달라도 한참 다르셨다.
 
유혹하는 인간의 적인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마귀가 완패를 당하고 무력하게 물러가야만 한 것이다. 이 부분이 우리 예수님의 멋진 부분이요. 바로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깊게 예수님을 묵상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무엇으로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을까? 이 부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호하게 끊을 수 있는 결단력만 있다면 마귀 아냐 마귀의 할배가 온다 해도 예수님처럼 마귀의 존재자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단호하게 끊는 이 부분이 문제이다. 문제가 뭔가 하면, 머리로 생각할 땐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 생각이 머리를 잠시만 벗어나면 유혹의 덩어리로 바뀌고 만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 생각이 바뀌고, 분명히 머리는 동쪽의 학교를 향해 가라고 명령을 하는데 발은 서쪽의 P.C방으로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혹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는 이미 다 계산을 해서 논리 정연하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상대방에서 열 받는 소리를 하는 순간 논리고 뭐고 할 것 없이 엉망이 되고 만다.
 
이런 부분이 모두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요 유혹의 강에 헤엄치는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유혹의 강에서 유유히 헤엄쳐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쉬운 말로 하면 그 유혹의 강을 빠져 나오라는 것이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떤 상황에서도 같이 하셨듯이, 우리자신들도 기도와 수련이라는 훈련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게 맺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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