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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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살레시오 수녀회)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마리아,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녀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단다.” 나이 많은 친척 언니가 임신했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천사의 알림은 처녀인 몸으로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이는 마리아에게 인간적으로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수녀원에 들어온 지 일 년 가까이 될 무렵이었다. 하루 종일 종소리에 따라 공부하고 일하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몸에 배지 않은 시간표 생활. 거기에 종소리는 왜 그리 요란하던지….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쨍쨍 울리는 비상벨이 수녀원 종소리였으니까. 한 번 칠 때마다 놀라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래도 하루 또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떠나온 세상 밖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나의 뇌리를 ‘이렇게 한평생 살아야 하는가?’ 하는 유혹이 스쳤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 이곳에 묻히겠다.’는 각오를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정말 내가 한심했다. 그 씁쓸한 유혹은 수녀원의 생활을 지루하게 끌고 갔으며 그렇게 맛있던 세 끼 밥맛을 쓰나미처럼 앗아갔다.
무거운 마음으로 저녁기도를 하러 갔다. 성수를 찍고 성당에 들어가는데 먼저 와 계신 수녀님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얀 수도복에 깊은 세월의 흔적을 담은 얼굴을 보는 순간 ‘저분들도 살았는데 내가 왜 못살아.’ 하는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초등학교 3학년인 소영이는 여행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소영이는 첫날부터 코피를 흘렸다. 그런데도 토끼처럼 잘 따라다녔다. 계속되는 출혈 때문에 콧구멍에서 솜을 뺄 틈이 없는데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나는 지치고 피곤할 때 어린 소영이를 보면서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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