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4 조회수985 추천수16 반대(0) 신고
 
2007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who sit in marketplaces

and call to one an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mourn.’

(Mt.11.16-17)

 
제1독서 이사야 48,17-19
복음 마태 11,16-19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저는 겨울이 되면 수단 위에 스웨터를 하나 껴입습니다. 이 스웨터 하나 입으면 상당히 따뜻하거든요. 어제 역시 수단 위에 이 스웨터를 입고서 고해성사를 주기 위해서 고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주면서 스웨터를 보다가 문득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스웨터에는 바람이 솔솔 들어올 정도로 털실 사이에 틈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옷보다도 더 따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찬바람이 들어올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더 추워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지요. 그래서 저는 미사 후, 인터넷의 지식 검색을 이용해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따뜻한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스웨터가 따뜻한 이유는 털실과 털실 사이에 틈이 있는데, 그 틈에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틈으로 차가온 공기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하~~’라는 감탄사를 내던지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어요. 우리들 마음에도 스웨터처럼 따뜻한 공기를 품을 수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지요. 즉, 우리들 마음의 틈새에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차가운 마음에 비유될 수 있는 부정적인 마음들이 들어올 틈이 없게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여유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분주하게, 그리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치여 가면서 정말로 힘들고 고단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여유 없이 살다보니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없습니다. 스스로 힘들다보니 남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보다는 우선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 내 편보다는 적을 더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이렇게 여유 없이 살아가는 그래서 우선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꾸짖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할 때에는 ‘마귀 들렸다’고 말하더니만, 예수님께서 그 반대로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면서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았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남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6만 개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 중에서 어느 정도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긍정적인 생각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생각만인데도 외형적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너무나도 당연하지요.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이 좋으세요? 아니면 부정적이고 미움의 말만 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이 좋으세요? 물어보면 숨차죠? 당연히 긍정적이고 좋은 말 하는 사람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테고,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은 외적인 모습도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 마음의 틈새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내 마음의 틈새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채워 놓읍시다.





진정한 이발왕(짜오 펑, ‘글로벌 CEO를 위한 관리 우화 66’ 중에서)

중국의 민국시대, 경성에는 ‘이발왕’이라 불리는 유명한 이발 대가가 있었다. 그의 명성은 대단했고 기술도 상당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세 명의 제자만 두었다. 이런 그의 괴짜 같은 성격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발왕의 세 제자들은 각자의 특기가 있었다. 한 명은 부녀자의 머리를 우아한 모양으로 잘 들어 올리는 데 능숙했다. 다른 한 명은 남자들의 머리를 잘 만졌다. 아무리 손질하기 어려운 형태의 머리라도 그의 손끝에서는 문제없었다. 마지막 한 명은 노인들의 삭발을 잘했다. 그가 삭박한 머리는 거울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반짝였다.

하루는 가게에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가능한 고전적이고 우아하게 머리를 올리려는 젊은 여자와 머리를 신사적인 형태로 다듬으려는 중년 남성, 그리고 머리가 희끗한 나이든 노인이었다. 노인은 머리가 최대한 빛나게 삭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발왕은 삭발에 능숙한 제자에게 중년 남성의 머리를 맡기고 부녀자의 머리에 능숙한 제자에게는 노인의 삭발을, 그리고 남성의 머리에 능숙한 제자에게는 젊은 여자의 머리를 맡겼다.

놀란 것은 세 명의 제자뿐만이 아니었다. 문밖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가 수년간 쌓아 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판이었다.

세 명의 제자는 스승의 결정에 따라서 손에 든 도구를 놀리기 시작했다. 삭발에 능숙한 제자가 우물쭈물 중년 남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머뭇거리며 가위를 들더니 머리카락 한 뭉텅이를 싹뚝 잘라 버렸다. 삭발에 숙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들어 스승님을 바라봤다. 제자의 실수에도 이발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그의 마음도 조금씩 평정을 찾았다. 눈을 감고 선배님과 스승님이 남자 머리를 손질하던 장면을 열심히 떠올렸다. 그러고는 아주 훌륭하게 이발을 마쳤다. 마찬가지로 다른 두 제자들도 용기를 얻어 자신들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이후로 세 명의 제자들은 각자 자신 있는 분야만 하려 들지 않고 다른 분야도 가능한 한 많이 해 보았다. 그들의 마음속에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양한 재주를 익혀야만 새로운 시대에 이발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But wisdom is vindicated by her works. 
(Mt.11.19)
 
 
Any Dream Will Do - Phil Coulter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