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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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7-12-22 | 조회수52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루가 1,39-56)
-유 광수신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나눈 이야기를 보면 세속적인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주님의 어머니께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라고 했고, 마리아는 이를 받아서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라는 등 모두가 주님에 관한 이야기, 믿음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것을 영적 이야기라고 한다.
영적 이야기란 무엇인가?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요한 6,63)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인 주님의 말씀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적인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깨닫게 된 것들을 나누는 것이다. 즉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신 일들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님이 내 안에서 어떤 일들을 하셨고, 주님의 은총으로 내 삶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무엇을 새롭게 깨달았으며, 어떤 일들이 내 안에서 이루워졌고 또 지금 내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워지고 있는지를 나누는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우리는 마리아의 노래를 "마니피깟"이라고 한다. 마니피깟이란 "위대하다, 장엄하다, 참으로 놀랍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마니피깟이란 "주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일들에 관한 노래"라는 뜻이다. 그럼 주님께서 마리아에게만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는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다. 다만 내가 그 일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보지 못하는가?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주님의 말씀을 보고 듣지 않으니까 영적인 감각이 살아있지 못하다. 그래서 주님께서 매순간 우리 각자에게 위대한 일들을 이루시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영적인 의식이 없이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의식에만 깨어있고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도 마리아처럼 나의 마니피깟을 부를 수 있을 때 영적인 생활을 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마니피깟이어야 한다. 한 순간도 주님께서 내 안에서 위대한 일들을 하지 않으시는 순간이 없고, 또 내 주위에 펼쳐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주님의 위대한 일들을 찬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신비가이고, 인생은 살아야 할 신비이지 풀어야할 과제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위대한 신비를 감상하고 노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주님을 찬미하라. 흘러 가는 구름을 보고 주님을 찬미하라. 내가 오늘 살아있음을 보고 주님을 찬미하라. 내가 오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보고 주님을 찬미하라. 내가 함께 사는 가족이 있음을 보고 주님께 찬미하라.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눈을 주님을 찬미하라. 등등 끊임없는 찬미가 즉 마니피깟을 불러라. "숨쉬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라!"(시편 150,8)
성바오로가 "주님은 곧 성령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코후 3,17)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사는 사람 즉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에서 모든 곳에서 주님께서 이루시는 위대한 일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어떠한 막힘도 없이 자유롭게 주님을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이 되고, 작곡가가 되고, 화가가 된다. 한 마디로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 그것도 지칠 줄 모르는 창의성이 샘물처럼 솟아나온다. "나는 종탑마다 돌아다니며 종을 쳐 댄다네. 그러고는 춤을 춘다네!"라고 시인 랭보의 기상천외한 시상이 나타나듯이, 또 다윗 왕이 왕이면서도 너무 즐거워 주님 앞에서 발거벗고 춤을 추었듯이 언제나 어디서나 새로운 노래 새로운 춤을 추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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