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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3일 야곱의 우물-마태 1, 18-24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3 조회수506 추천수7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마태 1,18-­24)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친구가 똥물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에 서서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옵니다.”(장일순, 「좁쌀 한 알」 중에서)

 
마태오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까지 십사 대,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 십사 대,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 십사 대라고 하였습니다. 이 족보의 명단에는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시아버지의 아이를 가진 타마르, 창녀 라합, 이방인 여인 룻, 다윗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예수는 고상하지 않은 족보를 통해 ‘똥물’에 들어오셨습니다. 강생입니다.

 
루카복음은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을 알리고, 마태오복음에서는 요셉의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주님의 천사는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름으로써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그들이 기다려 온 다윗의 후손 메시아가 예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십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햇수가 서른세 해였듯이 예수님 또한 서른셋의 나이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한 도읍 천상 예루살렘의 왕이 되셨습니다. 특출한 인물은 탄생도 특별합니다.
 
구약에서 이사악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축복의 아들이요, 사무엘은 아기를 갖지 못하는 어머니의 기도로 잉태되었습니다.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도 이사악과 같은 처지의 부모한테서 태어났고, 예수님은 동정녀한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남으로써 태초 때처럼 무에서 유의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당시 풍습에 의하면 두 약혼자는 각기 부모의 집에 따로 살면서도 법적으로는 부부로 간주되었습니다. 약혼식을 치르고 약 1년 후 남자가 약혼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혼례식을 올리는데, 마리아의 경우 요셉의 집으로 가기 전에 이미 아기를 잉태했기 때문에 당대 유다 혼인법에 따라 요셉이 마리아한테 이혼장을 써주고 두 증인 앞에서 소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수도, 모른 체할 수도 없었을 요셉의 고뇌와 사랑의 상처를 짐작해 봅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배신했으니 율법대로 처벌하겠다며 분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율법과 감정대로 하지 않고 마리아와 아기 두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자 한 요셉은 분명 ‘의로운 사람’입니다.
 
엘리사벳 앞에서 주님을 찬양했던 마리아가 요셉 앞에서는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기란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으며, 누가 믿어줄 수 있을지? 그러나 그는 이미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고 하였을 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한 대답 안에서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고 맡기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애쓰진 않았지만 마리아 역시 오해를 견뎌내야만 했던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철저히 입이 없습니다. 복음서에는 입이 없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몸소 대변해 주시는 예가 많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이야기에서 라자로는 중심인물임에도 끝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그가 죽은 뒤 아브라함이 그를 대변해 주지요(루카 16,19-­31). 그는 성녀 소화 데레사가 말한 ‘작은 자’의 이미지로 남습니다. 마르타와는 달리 입이 없었던 마리아(루카 11,38-­42)와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향유를 부은 여인(요한 12,1-­8). 예수께서는 몸소 이 작은 이들의 입이 되어주셨습니다. 이제 입 없는 마리아와 요셉을 위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고, 들을 귀가 있는 그들은 들은 말씀대로 곧 행동에 옮깁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1,20ㄴ-21)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꿈을 산산조각 내지 않으시고 당신의 방법으로 채워주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으로서 ‘야훼는 구원이시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이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는 이름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ㄴ-18)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성전 아름다운 문 앞에서 구걸하는 불구자한테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3,6) 하며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이 일로 최고의회 의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가두고 ‘예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며 풀어주었으나(4,18)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4,12ㄴ)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저 하늘 높은 데서 우리더러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치지 않으시고 똥물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와 모든 것을 나누십니다. 그 다음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며 죽음으로써 십자가 다리를 놓아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ㄴ) 하신 임마누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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