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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주인공" - 2007.12.23 대림 제4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3 조회수44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7.12.23 대림 제4주일                                                
이사7,10-14 로마1,1-7 마태1,18-24

                                                            
 
 
 
"오늘의 주인공"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그리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탄생이 임박했습니다.
 
오늘은 대림 마지막 4주일,
기쁨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대림초 4개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연한 주님의 탄생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치밀한 준비과정을 잊어선 안 됩니다.
우리가 꽃이라면 하느님은 뿌리입니다.
뿌리 없이는 꽃도 없습니다.
뿌리가 좋아야 꽃도 좋습니다.
 
꽃의 영광 이면에 뿌리의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이래야 꽃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마음은 늘 아래에 두어 겸손히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주님 탄생에 앞선 마지막 대림 4주일 복음의 주인공은 성 요셉입니다.
예수님이 꽃이라면 양부 성 요셉은 그 뿌리입니다.
성 요셉의 덕을 흠모하여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사는
여기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의 수도자들에게
요셉 성인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자 자극이 됩니다.
 
다음 성 요셉의 인품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하느님과 가까이 지낸 하느님의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첫째 성 요셉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복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런 견디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셉의 존중과 배려의 사랑이 놀랍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처신할 것 같습니까?
사람마다 갖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극히 침착했고 냉정했습니다.
자기보다는 상대방의 인격과 처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평소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 온 삶임을 증거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 하느님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상대방이 그 누구든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존
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둘째, 성 요셉은 침묵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고요한 호수에 그대로 하늘이 담기듯,
침묵의 고요한 마음의 귀에 들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의 기도를 위해 마음의 침묵과 고요는 기본입니다.
 
마음 따라 듣는 귀요, 냄새 맡는 코입니다.
마음이 시끄럽고 혼란하면 하느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고
그윽한 꽃향기도 맡지 못합니다.
궁즉통(窮卽通)이요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마침내 고요한 밤 요셉의 꿈에 나타난 주님의 천사입니다.
요셉 성인의 고뇌의 기도가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주님의 천사의 해명을 통해
요셉의 두려움과 의심의 어둠은 완전히 걷혔습니다.
 
평소 침묵과 기도에 충실했던 요셉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침묵과 기도의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셋째, 성 요셉은 인내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복음의 구절이 성 요셉의 순종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천사의 말씀을 충분히 들은 후
일체의 변명 없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요셉입니다.
 
 하느님은 요셉의 순종이 참으로 고마웠을 것입니다.
 성 요셉은 고요히 인내하면서 마리아의 처지를 심사숙고 했고,
주님의 천사의 말씀을 끝까지 경청했고 순종했습니다.
 
참지 못하고 부분만 보고 조급히 서두르다 낭패를 겪는 경우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에 인내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막연한 인내가 아니라 순종의 인내입니다.
 
산다는 것은 인내하는 것이자 순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한다 생각할 때 인내에도 탄력이 붙습니다.
 
체념적인 인내가 아니라 사랑의 순종에 뿌리를 둔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 순종이요 인내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던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순종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갑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순종을 배워가는 인내의 학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인내와 순종의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아주 오랜 전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형제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수사님, 성서에서 가장 좋은 이름을 택한다면 어느 이름을 택하겠습니까?”

지체 없이 대답했고 내심 만족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임마누엘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 있을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을 앞두고 기쁨에 가득 차 있는 우리들이지만,
이미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역시 영적 임마누엘입니다.

오늘 강론의 제목은 ‘오늘의 주인공’ 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영원한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요셉처럼
존중과 배려의 사람으로,
침묵과 기도의 사람으로,
인내와 순종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 역시 언제나 오늘의 주인공 임마누엘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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