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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어, 개념의 박해 그리고 순교 [수요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5 조회수378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 때문에 과연 오늘 이 시대에는 박해가 끝났을까
외적인 박해 보다 내적인 박해에 자신의 눈을 돌려 보아야 할 때인 것같다.
 
박해의 겉모습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 속모습은 다른 존재의 영이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내적인 박해가 더 가증스럽기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이는 영'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영혼에게 참으로 힘드는 일이 되었다.
분별(식별)할 수 없는 영혼들은 그저 결박당한 체 구원과 생명의 반대로 이끌려 가야 한다.
 
분별 혹은 식별이란 자기 '내적인 눈'을 의미할 것이다. 참 진리와 거짓된 유혹을 가려내는 일이다.
사람의 '육적인 힘'으로는 거짓의 영적인 존재들을 상대하기란 무척 까다로와 졌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리스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협조자이신 '진리의 영'을 모든 사람 각자의 내면에다 보내어 주신 것이다.
'진리의 영' 곧 주님이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속이는 영'들의 진리가 아닌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게 하셨다.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시다 <1요한서> 그런즉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을 알게 하시고 가려내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뱀은 진리가 무엇인지부터 - 인간적인 회의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이 말씀 안에는 '진리의 영'(성령)이 내재하여 계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마음에 새긴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진리(즉 말씀)으로 숨어 계시며 사람 안에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말씀이 사람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은 '말씀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 속에 성경의 그리스도 복음 말씀이 새겨지지 않았는데 '말씀을 받았다'고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 속에 새겨진 하느님의 말씀 곧 '진리(말씀)의 성령'께서는
'속이는 영'들의 거짓말(요설, 거짓 메세지)을 분간해 낼 수 있게 하신다.
성령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시다.
그리스도의 은총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의 영혼을 단단히 지켜 주시고
하느님의 생명으로 온전하게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이다.
 
자기 내면에 '속이는 영'이 들어오면 자기 자신을 '보이지 않게' 박해를 가한다.
그러나 그 박해는 옛날과 다르다. 달콤하고 탐스러운 에덴의 유혹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짐승(묵시록)이 올라 왔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뱀은 이제 늙고 오래된 뱀이다.
그러나 그 뱀의 본성은 다를바가 없다.
 
인간에게 탐욕과 이기심과 교만으로 유혹한다. 창세기의 뱀은 인간에게 말(언어, 개념)을 할 줄 알았다.
인간의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스도의 하느님 진리(말씀)과 반대되는 요설을 해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기를 하며 마치 하느님의 계시인 것처럼 꾸며 "너희에게 이렇게 말(언어, 개념)한 것은
너희가 하느님처럼 될 줄을 아시고 말한 것이다"며 거짓된 메세지(요설)을 인간의 말(언어)로 속삭인다.
하느님의 명령(말씀,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미혹시킨다.
뿐만아니라 거짓 기적도 일으켜 뱀의 말을 믿도록 인간의 육적인 눈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간은 결국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보이는 것에는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탐욕과 교만에 의해서 뱀의 교설(대화, 글 문장)에 마침내 무너지고 말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 안에다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을 거부할 수 있는 뱀이 가르쳐 준 요설(언어, 개념)에 근거하여
자신의 보호 방어체계를 말(글, 메세지)로 구축하는 것이다. 창세기 에덴 때에도 인간은 뱀의 말을 수용하였다.
 
자기 자신이 진리에 대한 방어체계를 '거짓말'로 스스로 구축하여 사람은 자기가 자신을 박해하게 된다.
외적으로 피흘리는 박해가 아니라 더 교할해진 달콤한 박해로 뱀의 속박에 결박당하고 만다.
 
'영의 싸움'은 말(언어)의 싸움이다.
'영'이란 언어(말, 개념)을 타고 오기 때문이다.
말(언어) 속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의 '영(혼)'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 곧 하느님 '말씀(진리)의 영'이시고 진리 속에는 하느님의 '영'이 내재되어 있다.
악령은 '속이는 영' 곧 뱀의 거짓된 가르침(진리에서 벗어난 요설)이며 그 속에는 뱀의 '영'이 들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짓말을 가르치는 '속이는 영'들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리스도와의 일치이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계명)의 믿음'이다.
사람 안에 그리스도께서 없는 성령은 '성령이다고 속이는 영'이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이시고 이 진리는 사랑(계명)이시기 때문이다. 에덴 때에도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다.
자기 안에 사랑의 근간을 세우지 못하면 사랑에 반대되는 요설(언어, 개념)의 온갖 탐스러움에 빠지게 되고
자기 방어체계를 가동시켜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의 순교(자기 십자가)마저 저버리게 한다. 이는 '그 불순종'이다.
 
인간의 언어와 개념에 대해 웃습게 보고 소홀히 대하면 '영'의 분별을 못하게 만든다.
말한다는 것은 '영'의 움직임이다. 성찰한다는 것도 '영'의 움직임 곧 언어(개념)의 움직임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언어는 사람을 지배한다. 탕녀는 인간의 언어 속에 들어 앉아 있다. 사람들이 에덴에서 뱀의 죽음의 말(언어)를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인간이 생명의 말씀(진리)을 받아 들이게 하셨다.
 
우리가 박해 받을 때 (자신이 자기를 박해할 때)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아버지의 영(말씀)이시다.
 진리의 영이시다.
사랑이시다.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여야 한다.
 
에덴 때처럼 하느님의 말씀(계명)에 또다시 불순종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참고>
2766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녀다운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말씀만이 아니라 동시에 성령도 주시는데,
성령을 통해서 이 말씀들은 우리 안에서 “영과 생명”(요한 6,63)이 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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