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얼마 전 방송에서 사회자가 나에게 질문했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나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잖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 바란다.’는 것이 남의 일처럼 들리곤 하거든요. 신부님께서는 가슴이 뛰도록 바라고 원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질문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가슴 떨리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때는 언제였던가? 문득 사제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던 가슴 떨리던 시절이 생각났다. 사제가 된 지 어느덧 23년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똑같이 삶도 비례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제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되어가는 존재다. 따라서 사제의 길에서 안주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이미 모두 경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떨림도 흥분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특별히 생각나는 날이었다.
스승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예수님의 부활 체험은 요한을 온유하고 사랑 많은 사도로 변화시켰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늙도록 활동했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해서 간신히 집회에 참석해서도 설교에서는 늘 “자녀들이여, 서로 사랑하시오.”라며 사랑만을 역설했다고 한다. 요한은 사랑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랑의 인물이 되었다. 물론 그의 삶 전체에 주님의 사랑이 관통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요한처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삶에도 분명히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슴 떨리고 흥분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장이다. 우리는 기억이 하느님의 큰 은총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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