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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아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2 조회수637 추천수6 반대(0) 신고
 
 
 
 

<나는 아니다>  ...윤경재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 1,19-28)



무자년 한 해가 시작되는 아침입니다. 교우 여러분 새해에는 하느님 은총을 충만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어제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하루 종일 주고받았습니다. 편하게 들어서 좋고, 또 나도 어렵지 않게 말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며칠 계속해서 복을 빌어 주겠죠. 참 쉬운 인사인데 평소에도 자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모르는 체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던 게 부끄러워집니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복을 받으신 분은 성모님일 것입니다.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는 인사를 받으셨고, 또 우리 신앙이 계속 되듯이 성모송도 계속해서 불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받으신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복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성모님께서 받으신 복은 고통이었습니다. 자칫 미혼모가 될 뻔했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피신여행도 자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것이었을 겁니다.


살다보면 언제 보람을 느끼던가요? 어떤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며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를 이룰 때 행복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또 궁금한 것을 알려하고 이해했을 때 기쁨을 얻게 됩니다. 매사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벌어진다면 정말 하루하루가 힘겨울 것입니다. 성모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매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랬기에 복음서 저자들은 그 심정을 한마디로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라고 적은 것입니다.


자기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떠할까하는 묵상을 해보면 참으로 막막해집니다. 과연 나 같으면 어땠을까 묵상해 봅니다.


그런 삶을 사는 데는 참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사는 지혜입니다. 흔히 無心이라는 말로 이야기 하는데 이 무심은 바로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에서 벗어나 전체를 통찰하는 지혜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명이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라에 가지, 더 나아가 인류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무심입니다.


그 무심을 지니고 살 때라야 자기에게 다가오는 신비를 아무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바로 진정한 無心의 상태입니다. “나는 ~이 아니다.”라고 천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 정확하게 인식하는 삶이 바로 무심의 삶입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이처럼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가야하는 삶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삶에 충실히 살았습니다. 그 무심의 삶이 세례자 요한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보람도 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자기에게 세례 받으러 오는 것을 목도하고 참으로 무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동안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이제는 저 분을 따라가라고 이끌어 줍니다. 안드레아와 또 다른 제자가 바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이었습니다. 안드레아는 그 예수와 하룻밤을 지냅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 형 베드로에게 가 자기 스승 요한이 가르쳐 준대로 새로운 스승을 따를 것을 권합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의 기쁜 소식이 이 당위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끼던 제자들을 더 큰 분에게 이끄는 자세, 누구도 쉽게 실천하지 못 하는 일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알고 자기에게 무심했던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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