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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3) 참 닭과 양계장 닭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2 조회수546 추천수2 반대(0) 신고
 
 
                    (펌) -  (3) 참 닭과 양계장 닭
                                 이순의
 
 
 
 
 
 
 

2003년12월10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ㅡ이사야40,25-31;마태오11,28-29ㅡ

 

    참 닭과 양계장 닭     

                               -하늘이 주신 본성?-

 

 

하얀 입김이 새벽안개 속으로 빨려들어 갈때 아버지 어머니의 손놀림은 늘 분주하셨다.

외양간의 소와 우리 안의 돼지와 닭장 안의 닭들에게 먹이를 주느라고 끌이고 섞고 잘게 부수어 제각각의 그릇에 담아 주는 것으로 아침을 열었다. 도시로 유학중인 언니 오빠들의 생활비와 교육비로 희망의 때를 기다리며 토실하게 잘 먹고 잘 자라주는 그들에게 감사한 기대는 늘 부족하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되어 돌아온 언니오빠들에게 닭장 안으로 들어가 닭을 잡아오게 하셨다. 객지에서 자취하면서 스스로 끼니를 꾸려나갔을 언니오빠들에게 영양보충을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오빠들은 여남은 마리의 닭들 중에서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수컷만큼이나 육덕이 든든한 암탉을 잡아다 어머니께 받쳤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낚아채 들고 애써서 골라잡은 그 닭을 닭장 안으로 휘익 던져 버렸다.

 

 

그리고 비실비실 볼품없어 먹잘 것도 없는 닭으로 두어 마리를 잡아다 이내 목을 비틀고 털을 벗기셨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막내인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마리만 잡아도 충분히 먹을 텐데 아깝게 뭐 하러 두 마리나 잡아서 마리 수만 줄이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닭장 안에는 서너 마리의 탐스런 어미닭만이 옹기종기 남아있었다. 언니오빠들이 떠나고 난 닭장 앞에 앉아 저 닭 서너 마리만 잡지 않고 닭장을 텅 비워버린 어머니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부터인지 어머니는 튼실하고 살집 좋은 닭부터 골라잡아오게 하셨다. 조금이라도 가벼운 느낌이 들 때는 더 살지면 잡아야 한다고 다른 닭으로 다시 잡아오게 하셨다. 어린 막내의 시각으로 본 어머니의 변덕은 가늠조차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내가 도시로 유학을 떠나오고 여름방학이 되어 집에를 갔더니 닭장 안에 닭이 없었다. 어린 시절 언니오빠들이 공부 할 적에는 여름이면 닭장 안에 닭이 가득차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소리 지르고 푸덕거리던 소란이 그치지를 않았는데!

섭섭함을 달래지 못하고 어머니께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는 참 닭과 양계장 닭에 대해 말씀하셨다.

일 년 내내 종자를 번식할 씨암탉은 애지중지로 보살피신다. 다른 닭이 쪼면 그 닭은 그날 저녁 밥상에 백숙으로 앉고, 씨암탉이 먹이를 빼앗긴다 싶으면 모이그릇을 따로 분리해서 특식으로 마련하고, 잘생긴 수탉과 신방도 꾸며주신다. 그렇게 해서 햇빛고운 봄날이 오면 진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피어날 때 겨울 내내 모은 달걀을 앉히셨다. 어미닭은 일 년 동안 호위 호식한 사랑에 답례라도 하듯이 알을 품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예쁜 새끼병아리를 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새끼들을 한 마리도 잊어버리지 않고 외양간도 견학가고 돼지우리의 돼지 아줌마에게 다가가 그렇게 미운아이들을 어떻게 키우시냐고 제 자식 자랑도 하면서 보이는 모이마다 잘게잘게 부수어 고루고루 나누어 먹인다. 봄비가 오시면 숫자도 많은 병아리들이 어미닭의 날개 밑으로 숨어들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는 어머니의 정성과 씨암탉의 사랑으로 귀한 달걀과 맛좋은 닭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양계장 닭이 등장한 것이다.

 

 

어느 해 일손이 바쁘신 어머니께서 달걀을 앉히시는 걸 놓치셔서 양계장에서 부화한 닭을 사다가 기르셨다. 그리고 다음 해에 달걀을 앉히셨다. 양계장 닭은 달걀을 품지 않고 쪼아 먹었다. 가끔은 달걀 품는 걸 성공한다 해도 병아리를 잘 키우지 못 했다. 양계장 닭이 까놓은 병아리는 어머니께서 먹이 주는 일에 몹시 신경을 쓰셔야 했다. 씨암탉에게 일 년 동안의 사랑과 애정을 투자해서 온 가족이 먹고도 부족함이 없었던 이유는 어머니의 희생이었다. 언니오빠들은 바빠졌고 어머니의 기력은 더 많은 일과 쌓인 피로로 예전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양계장 닭의 등장은 그런 어머니께서 모이 주느라고 일 년 내내 조석으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쉽게 사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요즈음 어린 시절에 격은 작은 기억이 새록새록 가슴에 떠오른다.

내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는 변했다.

내 아이는 닭 한 마리에게 그렇게 많은 마음들이 전해졌던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한다.

푸른 지폐 한 장이면 오토바이 멘이 실어다주는 치킨!

누런 지폐 한 장이면 아무런 노력 없이 백숙 한 마리를 끓여 내는 나의 모습을 보며 자란다.

하늘이 주신 본질에 대해 성찰 해 본다.

나는 내 아이에게 참 닭인 어미인가? 양계장 닭인 어미인가?

미물인 닭도 병아리를 까고 길러야 한다는데 하늘이 준 닭의 권리를 빼앗아버린 문명을 문명이라고 할 것인가?

얼마 전 TV에서 야성을 잃고 사육되는 동물들이 새끼를 낳고 돌보지 않는 것을 보았다.

사육사의 품을 어미로 착각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이 지구 전체가 양계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자성 해 본다.

나는 문명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아닐까?

하늘이 주신 본성으로 돌아가 온유하고 겸손함을 배워 편안한 멍에와 가난한 짐을 지고 영원한 안식의 길로 가야 한다는데.......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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