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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4)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3 조회수414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3년12월13일토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ㅡ집회서48,1-4.9-11;마태오17,10-13ㅡ

 

(4)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순의

 

 

     -큰언니의 흔적-

 단독주택 이층에 여남은 평정도 되는 방이 두개 딸린 집에 살고 있다. 각각의 살림도구들이 제 몫을 하기위해 비집고 앉아 서로 양보하며 그런대로 불평하지 않고 잘 견디며 살아간다. 살림살이의 모습은 우리부부의 인생 여정을 그대로 흡수하고 표현해 준다.

지금쯤 한번은 변화를 가졌을 법한 세월이 흐른 결혼 생활이지만 하느님의 지휘봉을 따라 사노라고 살다보니 묶은 향기만 가득하다.

 

 

시집 올 때 사온 사각 밥상은 귀가 깨지고 떨어져 나가 사각이기보다는 타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사의 흉터를 안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좁은 집에 사는 우리에게는 꼴이 흉한 밥상이지만 제자리를 널찍하게 차지하고 서있을 어느 대가 집의 근사한 식탁보다 순직한 종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듯이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동반자들은 우리부부와 함께한 삶의 모습들을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 새얼굴들이 눈에 뛴다.

 

 

그렇다고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좁은 자리를 피해 장롱 위에 얹혀 있다든지, 베란다에서 불러줄 시기를 대기 중인 녀석들은 하나도 없다. 내가 움직이면 이내 눈 안에 드는 자리에 있고, 손을 뻗치면 바로 손이 닫는 그 자리에서 항상 함께 하고 있다. 한 평 반이 될까 말까한 화장실에서 절반을 싹둑 차지하고 않은 세탁기! 결혼 할 때 사온 이조 식 세탁기를 수리하고 또 수리하고도 모자라서 뚜껑이 깨졌다. 송곳에 불을 달구어 몇 개의 구멍을 내고 나일론 줄로 꿰매니 뚜껑이 잘 닫히고 빨래도 잘 되었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커다란 일조 식 세탁기보다 유리하다는 생각에 그것이 불편하다든지 마음이 언짢은 생각 없이 그냥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커다란 일조 식 세탁기가 배달되었다. 큰언니가 막내 동생인 우리 집에를 다녀가셨는데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꿰매진 세탁기를 보며 눈물도 못 짓고 표현도 못하고 가신 것이다. 배달을 오신 아저씨들은 헌 세탁기를 꼭 가져가는 조건으로 물건을 판매했기 때문에 꼭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니의 간곡한 결단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는 어울리지 않게 품위와 체격을 갖추신 고품격 세탁기가 저 품격인 나를 도와주고 계신다.  

 

한편, 남편의 시련으로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경제적 손실을 보충하는 것 보다 자식을 길러야 할 절박한 현실이 있었기에 집을 비워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큰언니는 나를 슬프게 했다. 압력솥에 밥을 해서 장롱 안 이불 속에 넣어놓고 가면 낮에 아이가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조금 넉넉히 해서 그릇에 담아 두면 저녁에 돌아 와서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내게는 그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 전기밥솥이 없었던 시절에 아버지께서 출타하셔서 저녁 늦게 까지 오시지 않으면 어머니는 늘 장롱 속 이불속에 밥을 묻으셨다.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밥을 묻어두지 않은 이유는 막내라서 늘 끼고 자는 나의 잠꼬대가 아버지의 밥그릇을 차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니의 생각은 달랐다. 언니가 등에 업어서 키운 막내 동생의 척박한 삶도 싫지만 일을 하고 돌아와 찬밥을 먹는다는 생각도 싫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전기 보온 압력솥이 생겼다. 진짜 편했다. 남의 일을 해 보지 않다가 일을 하게 되어서 저녁이면 쉬고 싶었는데 밥 하는 신경은 덜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때는 이틀 치 밥도 해 두었다가 먹기도 했으니 정말로 큰언니가 사준 밥솥이 요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하루에 한번만 밥을 해서 하루에 세 번 솥의 입을 열고 남편과 자식과 나 자신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다. 큰언니의 깊은 속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컴퓨터!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나 좋은 선물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또 가슴이 아프게 되었다.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에 가면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왜 그러는지 물어 보았더니 자기는 컴퓨터가 없어서 친구들이 안 놀아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컴퓨터를 살 수 없으니 네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네 자신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법을 찾아내야 어른이 되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고 타일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친구들과 친해지는 법을 알았다고 자기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게임 책을 사주면 자기가 그걸 다 외워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책을 날을 밝혀서 읽었다. 며칠을 너무나 신나게 학교에를 갔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지 못 했다. 갑자기 게임의 용어라든지 방법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아버린 우리아이에게 친구들이 집으로 데려가서 해보라고 한 것이다. 내 아이는 그 자리에서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강하게만 타일렀다.

 

 

"세상은 컴퓨터가 있는 사람보다 컴퓨터가 없는 사람이 더 많아! 그 아이들은 게임만 알지만 너처럼 책은 모르니까 우리가 컴퓨터를 산다면 너는 하루 만에 그 아이들을 제압할 수 있어. 분명히 하느님이 컴퓨터를 주시는 날이  올 거야. 그 때를 위해 열심히 책을 보아두어라." 라고 밖에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도 어미인지라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큰언니에게 하소연을 하고 말았다. 그 다음 날로 언니는 컴퓨터 한대를 차에 싣고 오셨다.

 

 

형부께서 업무상 성능이 좋은 컴퓨터로 교체하고 조카들이 헌것을 썼는데 집에 새 컴퓨터가 있다고 조카들이 쓰는 헌 컴퓨터를 가져와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생겼고 아들아이보다 내가 더 큰 편안함을 누리면서 육칠년을 사용했다. 얼마 전 우리 집에도 새 컴퓨터를 샀다.  인터넷도 해야 하고 아들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이사는 못 가도 컴퓨터를 사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생긴 것이다.  그래도 나는 큰언니가 주신 컴퓨터를 버리지 않았다. 그 속에는 그 시기를 살은 나의 인생이 저장되어 있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중요한 이야기는 해킹의 염려가 없는 "큰언니의 가슴"이라는 컴퓨터에 삶을 저장하고 있다.

 

오늘의 복음은 먼저 오신 엘리야, 요한을 알리신다.

나는 예수님처럼 성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잘 사는 사람도 못 되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큰언니는 단지 나 보다 어머니의 뱃속에 먼저 앉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이룰 것도 없는 내게 엄청난 사랑과 바다와 같은 마음을, 등에 업어서 키우던 어린 시절부터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날리는 이 나이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쏟고 계신 것이다.  요한의 수고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루실 길이 크셨지만 나는 언니에게 이루어 드릴 것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조차 면구스럽다.

 

어데 큰언니의 흔적을 이 종이 몇 장에 채울 수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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