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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해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까?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4 조회수79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새해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까?
 

인생의 삶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무한한 여행이다. 그런데 시공 안에서의 여행은 그다지 긴 여행은 아니라고 느껴짐은 그만큼 시간에 압도되었기에 하는 말일게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그래도 하느님과 벗하는 사람은 그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벗하는 사람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그럼 무엇이 달려오고 달려가게 하는 그 시공을 초월하게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분과 벗하면 된다. 그런데 그 벗한다는 그 말이 너무 어렵다. 그분과 벗을 하기위해선 항구함이 있어야한다. 그것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항구함 없이 그분과 벗한다 함은 허구일 것이다.
 
소설과 현실이 다르듯이 항구함과 하려는 것과는 너무 큰 겝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린 항구함을 위해 반복이 주는 위력과 기쁨이 뭔가를 발견해야한다.
 
그것을 아는 이들이 항구함의 진수를 알기에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이 된다. 따라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성취하는 모든 것의 95%가 습관의 결과라는 조사도 있다.
 
지금의 습관이 10년 후의 나를 만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바른 습관을 창조하는 것은 세포가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훈련뿐이다.
 
그럼으로 내가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습관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 청함과 동시에 실제로 내가 그렇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공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벗의 길에 나아가는 것이다.
 

습관이 잘못 들여진 아이를 보자. 늘 아침이면 밥을 먹으면서 책가방 챙기기 바쁘다. 그것도 자기가 챙기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형에게 이것저것 명령을 한다. 그러나 엄마는 그 애의 그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지 않고 그냥 그 심부름을 해 준다.
 
그 아이가 그런 습관을 자기 안에 고착시키면, 그 애는 10년 후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는 불 보듯이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그 아들의 나쁜 습관을 못 고쳐 줌은 무엇일까? 그 엄마의 습관 속에 아이와 똑같은 습관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아이도 엄마로부터 그 습관을 전수 받은 것이다. 무서운 것은 무의식중에 그 습관이 몸에 배어 간다는 것이다. 뭘 어떻게 하랴? 엄마부터 과감하게 자신의 수술을 해야 한다.
 
그건 뭔가 온전하고 건전하며 항구한 여행을 위한 터전을 지금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미루고,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작은 일 즉 책가방을 챙기는 일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그것이 커서 기도도 부탁하고 의존하는 그런 차원이 된다면 그건 큰 문제이다.
 

습관을 고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자신을 개혁하는 차원을 넘어 창조하는 차원의 것이다. 그러나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차원에서 폴 게티의 말을 들어보자. “습관을 정복한 사람이 정상에 오른다. 습관이 가진 위대한 진가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습관을 창조하는 것이 훈련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한다. 자신의 미래를 깨뜨릴 습관을 미리 깨뜨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힐 수 있다. 결국 좋은 습관은 미래를 보장받는다. 원하는 대로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 좋은 습관에서 나오는 특은이다. 기도 안에 깨달음이면 깨달음, 비전이면 비전 그것이 그 안에 다 내재되어 있다.
 
지금 나를 직시하자. 내가 어떤 습관의 굴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자. 만에 하나 일그러지거나 고장 나 수리를 요하는 나의 그릇된 습관을 넘어 악습관이 있다면 기도하면서 시작하자.
 
하느님께서 그 악 습관을 고쳐달라고 청하자. 그냥 청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청하자. 그럼 능력의 그분께서 반드시 고쳐 주시리라.

또 하나 하느님께 청할 것은, 나만 됐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님을 깨달으면서 공동체의 구석구석을 생각하며 챙겨보자. 어느  한 구석에 흉물스럽게 일구러진 악 습관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있다면 지금 챙겨주자. 더 늦으면 아예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흉물스런 악 습관의 가지에서 새순이 나와 창조의 삶을 사는 신비스런 참 습관이 나온다면 그건 하느님의 시간을 함께 여행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기에 애덕으로 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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