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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5일 야곱의 우물- 요한 1, 43-51 묵상/ 이미 나를 아시는 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5 조회수474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미 나를 아시는 분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43-­51)
 
주영길 신부(청주교구 봉방동 천주교회)
◆창세기가 전하는 창조 이야기 가운데 으뜸은 ‘인간 창조’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당신 모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당신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다(창세 1,26; 2,7 참조). 그래서 고대인들은 인간의 들숨날숨이 하느님과의 보이지 않는 끈이라고 생각했으리라. 하느님과 연결된 우리의 숨결은 불가분의 관계성을 의미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계시며 이끌어 주신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첫 만남을 전하고 있다. 처음에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증언을 듣고 비아냥거린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1,46) 곧 나자렛 출신 예수가 메시아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그의 됨됨이를 알고 계셨다. 복음사가는 나타나엘에 대한 선견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듯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잘 아신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신다(2,25 참조).
 
예수님은 이미 나를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나를 알고 계심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유행가처럼 번지던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 있다. 모 방송에서 지체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노래를 합창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어떤 형태의 삶이나 인생도 주님은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신다. 하느님 앞에 무의미한 인생, 쓸모없는 생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어렵게 세례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자매님이 있었다. 자식을 못 낳아 소박을 맞은 이후 외롭게 살아온 분이었다. 세례식이 끝난 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 그분의 말씀이 가슴 뭉클했다. 늦게야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고백이리라. 우리도 ‘주님이 나를 알고 내가 주님을 알기에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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