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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靈性)의 시대" - 2008.1.13 주님 세례 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4 조회수37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8.1.13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사도10,34-38 마태3,13-17

 



"영성(靈性)의 시대"

 

얼마 전 신문에서 본,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말마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인수위원회에서 보고하던 국정홍보처 직원의 자기 고백과도 같은 말마디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었습니다.”

주관 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딱한 처지를 빗댄 말입니다. 
요즘 시대에 던져지는 화두와 같은 고백입니다.

물질주의, 금전만능주의, 세속주의에 매몰되어 
영혼이 없는 욕망의 육신의 사람들만 점점 늘어나는 오늘날의 추세입니다. 

하늘을, 하늘의 별을 잊고 사는 사람들 참 많을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경제, 영혼이 없는 정치.... 줄줄이 이어지는 오늘날 현실입니다. 
이와 더불어 요즘 고조되고 있는 공통적 관심사는 ‘문화’입니다.

울산대 최정호 석좌교수는 신문 칼럼에서 
“모든 훌륭한 경제, 훌륭한 정치는 반드시 아름다운 문화의 꽃을 피운다. 
문화가 시든 곳에서는 경제와 정치도 시든다.” 라고 결론지으며, 
김지하 시인은 광화문 문화포럼이 주최한 ‘아침공론’에서 
“지난 시대가 자유. 민주화가 목표였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창조적 비약이 절실하다. 
이젠 문화적 창조성이 국가 경쟁력이다.”라고 역설합니다. 

또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오르내렸던 고은 시인은 
다음과 같은 예언자적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머무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유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사유가 우리 영혼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란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겁니다.”

뿌리 없는 문화는 없습니다. 

문화의 뿌리는 영성이요, 영성이 꽃으로 피어난 게 문화입니다. 
중세 유럽 수도원들이 문화의 꽃을 활짝 피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튼튼한 영성의 뿌리 덕분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와 더불어 영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경제의 영성화가, 정치의 영성화가, 삶의 영성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믿는 모든 이가 
신비가가 되고, 관상가가 되어야 하는 빛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게 우리의 희망입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영성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축일입니다.

 

첫째, 하느님 향한 개방의 겸손한 삶이 우선입니다.

자주 하늘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늘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동안거에 들어가 
온 가슴 활짝 열어 하늘가득 담고 
침묵과 고독 중에 기도하는 겨울 나목을 배워야 합니다. 

이래야 하늘 은총을 상징하는 눈꽃을 피워내며 
태고의 고요와 순수, 신비를, 바로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새삼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회 수도가정의 가훈이 고맙습니다.

기도하고 일하고, 
하늘보고 땅보고, 
하느님보고 사람보고, 
관상하고 활동하고... 
이런 우선순위에 따라야 균형과 조화를 갖춘 훌륭한 영성가요 관상가요 신비가입니다.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을 찾아 나선 예수님에게서도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열린 겸손한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당황해 하는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겸손의 극치입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었고, 
늘 하느님을 향한 겸손한 개방의 삶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 하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 때 
하늘 역시 우리 향해 활짝 열리며 구름사이 햇살처럼 쏟아지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바로 이게 세례성사의 신비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세례 장면의 묘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바로 우리의 세례 장면이기도 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영과 우리 영혼이 만남으로 비로소 영적 탄생이요 영성입니다. 
세례성사 없이는 영성도, 영적 삶도 없습니다. 

육적 삶에서 영적 삶으로, 
내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자연인인 ‘사람의 아들’에서 ‘하느님의 아들’로라는 놀라운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얼마나 고맙고도 놀라운 사건인지요. 
이보다 더 큰 기적도 신비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외될 자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 누구든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하늘에서 예수님께 들려왔던 말씀,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렇습니다. 
이게 우리의 고귀한 신원입니다. 

하느님이 사랑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이요 딸들인 우리들입니다. 
과연 하느님의 아들답게, 하느님의 딸답게 영적 삶을, 관상가로서의 삶을 살아가십니까?

한 번의 세례만으로는 우리가 미덥지 않아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를 통해 
세례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자모이신 교회의 배려가 고맙습니다. 
역시 고백성사나 성체성사로 깨끗해진 우리 마음의 귀에 
활짝 열린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셋째, 영성은 봉사의 삶으로 표현됩니다. 

섬김의 삶을 통해 꽃처럼 피어나는 영성이요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세례성사는 물론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한 성령 충만한 삶이 
봉사활동의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성령과 능력으로 충만하신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된 우리들과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당신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나무가 좋아야 열매가 좋듯, 사람이 좋아야 열매의 봉사도 좋습니다. 
우선적인 일이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묘사한 하느님의 종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을 뜻하지만 우리 모두의 이상상입니다.
 
참 관상가와 신비가란 이런 모습입니다. 
좀 길다 싶지만 중요한 내용이라 인용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이어 하느님께서 바라시고 좋아하시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인간상이 제시됩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모두가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겸손하고 섬세하고 자비롭고 배려 많고 정의롭고 항구한 참 사람이 바로 주님의 종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평생 추구해야 할 인간상이요, 
이런 이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은 주님의 세례 축일 미사, 
우리의 세례를 환기하며 우리의 신원을 새로이 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빛으로서의 고귀한 신원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의 눈을 활짝 열어주시고 자유롭게 하시어 
우리를 당신의 빛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이기적 자기(Ego)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세상 물욕의 감방에서 풀어주라 
우리를 당신의 빛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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