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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흉내내기 <11회> 빵의 기적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7 조회수618 추천수4 반대(0) 신고
 
 
 

빵의 기적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올 때 약간의 비상식량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옆 사람 놔두고 혼자 먹을 수 없어서 없는 척하고 꺼내 놓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먹으려고 음식을 내놓았다가는 옆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몰래 감춰 두고 내놓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시장기를 느껴 무언가 꺼내 먹을 때가 되었는데 아무도 음식을 꺼낼 기미가 안 보인다.


   이때 한 어린이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이거라도 나누어주십시오." 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몽땅 내놓았다. 어린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무언가 먹을 것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어린이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왜냐하면 당시 부잣집에서는 밀가루 빵을 먹었고 가난한 집에서는 보리빵을 먹었기 때문이다.


   부잣집 사람들은 아무도 내놓지 않을 때 이 가난한 아이가 가진 것을 몽땅 내어 놓자 예수님은 바로 그것으로 기적을 행하신다. 먼저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바친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어린이 한 명이 먹을 분량밖에 안 되는 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나누어주면 줄수록 양이 줄기는 커녕, 점점 늘어난다. 마침내 거기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는데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그런데 그때 받아먹은 사람은 오천이 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도 사실 기적을 바라고 있다. 또 기적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어떤 기적적인 해결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적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기적이 주어지지 않는다. 자기를 내놓을  때, 자기를 희생할 때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도 가난한 아이 한 명이 자기의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놓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 아이조차 다른 어른들처럼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더라면 예수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전능한 기적의 힘을 발휘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인간의 노력에 하느님은 천배 만 배로 갚아주신다. 인간이 가진 것을 내어 놓을 때 하느님은 내어 놓은 것의 천배 만 배로 되돌려 주신다.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의 은총이라 말하고, 가적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이 없을 때는 하느님의 은총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나누는 것이다. 그 아이처럼 가진 것을 내놓는 사랑을 말한다.


   그 아이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가난한 아이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그걸 내놓으면 자기는 한 끼를 굶어야 한다. 그래도 내놓았다. 옆의 사람들이 아무도 안 내놓는 걸 보고 먹을 것이 없는 줄 안 모양이다.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플 것을 측은히 여겨 나누어 먹자고 내놓은 것이다.


   혼자 먹기에도 부족하지만 없는 사람과 나누어 먹자는 게 그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 아이의 그런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아이의 착한 마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기고 작정하셨다. 나누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예수님도 움직이고 하느님도 움직인다. 그래서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과 기적을 가져온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가해자의 잔학성뿐 아니라 갇혀 있는 이들끼리 참혹한 부정행위가 만연했다고 한다. 하루에 주먹만 한 빵을 한두 차례 먹는 것이 그들 식사의 고작이었고, 그들은 먼저 먹기 위해서,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의 기준이 노동력이었기에 그렇다. 그렇다 보니 노동력이 부족한 노인, 젖먹이 딸린 부인, 어린이, 병자들이 먼저 죽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은 결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죽음의 위기에 놓인 노동력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자기들의 빵을 나누기 시작했다.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 죽자 살자 먼저 먹고 빼앗아 먹던 빵은 결코 그들에게 충분한 양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보통의 상황에서 혼자 먹어도 턱없이 부족한 이 빵을 나누어주고 나머지만을 먹으면 더 배가 고파야 한다. 그러나 반을 나눠서 빵을 먹었을 때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 빵을 쪼개면 쪼갤수록 힘이 더 생겼다. 빵은 한 개가 두 개, 다섯 개, 아니 노동할 정도의 충분한 양식, 아니 그 이상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더 적게 먹었는데도 힘이 더 생긴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바로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가 가뜩이나 부족할 때 내 것을 나누어주면 나의 주머니는 더 쪼들려야 한다. 우리가 시간이 없을 때 나의 시간을 내주면 더 빠듯한 생활을 해야 한다. 건강이 안 좋은 내가 봉사하느라 움직이면 나는 더 지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주머니는 더 풍요로워지고, 나의 시간의 더 여유로워지며, 나의 건강은 더 활기를 찾게 된다. 바로 하느님께서 나의 주머니를, 나의 시간을, 나의 건강을 다시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기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이웃에게 주는 희생이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이웃에게 주는 희생이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런 기적은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진 것이 비록 자기 혼자 쓰기에도 부족할지라도 그것을 나눌 때 하느님은 더 풍성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또 실제로 이런 종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도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나누면 적어지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신앙 안에서는 나눌수록 커지고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도 기적을 원한다면 한 아이가 가진 모든 것, 즉 자기가 먹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은 것처럼 우리도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내어 놓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을 씨앗으로, 그것을 기초로 해서 주님은 우리 안에 커다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도 우리 안에서 아무런 기적도 행하실 수 없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바란다거나 기적을 바라는 것은 마치 씨앗도 뿌리지 않고 수확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한 아이가 자신이 먹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전부 내어 놓음으로써 오천 명이나 먹게 한 기적을 이끌어 냈듯이 우리도 우리의 것을 내어 놓고, 선행을 함으로써 우리 안에 소박한 기적이 일어나게 하자.


   우리는 기적을 바랐는가? 기적은 아니더라도 주님께 어떤 은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것을 내놓으면서 은혜를 바랐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내어 놓지 않으면서 은혜받기만을 바라지 않았는가?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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