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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 2주일 /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작성자신희상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9 조회수668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 2주일
조재형가브리엘 시흥5동성당 주임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들은 왜 천주교회로 갔는가!’ 이 책은 개신교 목사님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는 늘어나는데 개신교 신자는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또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로 개종을 하는데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이런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천주교회는 친절하지도 않고, 선교를 위해서 개신교만큼 노력하지도 않는데 어째서 천주교 신자는 늘어나는가! 목사님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천주교는 성스럽고 신비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둘째 천주교는 조직이 잘 되어 있어서 체계적이라고 합니다. 교황, 주교, 사제, 신자로 이루어지는 조직이 있고, 본당을 옮겨도 곧 적응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셋째, 헌금을 강요하지 않고, 제사, 술, 담배 등에도 관대한 편이라고 합니다.
성스럽고 신비하다는 것, 엄숙한 전례 등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천주교회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미사 참례 숫자가 점차 감소하고, 쉬는 교우가 증가하며, 교회 내에서 상처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방송 상담 프로그램을 하면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참 많은 고민이 있고, 아픔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삶이 기쁘고 즐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와 미사참례는 일상에서 가장 먼저 행해져야 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렇지 못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서 상처받고 아파하고, 신앙의 기쁨이 식어버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오늘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상처를 받는지, 그런 상처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의 유형은 대략 3가지입니다.
첫째 어떤 상처는 오해나 개인적 다툼에서 일어납니다.
본당의 새로운 신자들은 기존의 본당 조직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자발적 봉사자들은 때로 그들의 봉사를 너무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에 허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당 신부가 바빠서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갖기 어려울 경우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원하고 필요로 할 때 교회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에도 사람들은 상처받곤 합니다.

둘째, 때로 규칙과 규정들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부모가 미사 참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 아기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미사 때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신부님께서 야단을 치셨는데 그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는 커다란 조직이기 때문에 많은 규정과 규칙들이 있습니다. 이런 규정과 규칙이 교회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마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상처를 받곤 합니다.

셋째, 변화가 충돌과 대립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본당에 새 신부가 온 후에 의견의 불일치가 분출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가 거부되기도 하고, 본당에서 운영하는 학교나 유치원이 문을 닫는 경우도 있고, 일부에서 본당의 모금 활동에 심하게 반대하는 경우, 제의실의 리모델링 계획에 반대하는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실망감을 드러내게 됩니다.

상처받는 이유는 교회가 부족함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갖는 이상은 매우 높지만 현실은 교회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오해하고 부인하며 배반하는 제자들, 당신께서 기도할 것을 요청했을 때 잠을 자고, 붙잡혀 가실 때 도망가는 제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서도 신앙과 그 실천에 관한 논쟁이 잦았습니다. 역사를 통해서도 거룩한 사람들이 교회의 일부 사람이나 어떠한 사건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인간적 약점에도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고 성장시키셨기 때문입니다.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이름으로 과거와 현재에 교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용서를 청했으며, 다른 많은 주교들도 그들 교구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잘못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들은 상처를 바로 보고, 용서를 청하며, 이를 바로잡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다음 3가지의 방법으로 치유를 해야 합니다.
첫째,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의 상처와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대화야말로 상처를 드러내고 감정적 에너지가 사라지도록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이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 교회의 구성원, 곧 사람에 대한 분노와 거룩함의 끊임없는 원천인 교회의 신적 부분에 대한 분노를 분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문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실수로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오해로 생긴 문제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문제의 시작으로 돌아가 사태를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커다란 힘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우리가 용서하면 우리 자신도 용서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용서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우리는 상처를 덮어 버리고 지나치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용서하는 데에는 우리가 옳은지 그른지, 상대가 그 용서를 바라는지, 그가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노와 화, 좌절, 배신감 등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인내와 끈기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면서 용서를 해야 합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못이 없으면, 용서도 없습니다. 용서가 없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만들어 진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할 때, 우리는 만국의 빛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상처 입은 치유 자가 되어 주님을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이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게 됩니다.잠시 묵상하겠습니다.

 
 
따듯한 동행에 출연한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따뜻한 동행 2번째 출연한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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