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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0 조회수881 추천수18 반대(0) 신고
 
2008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가해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n.1.29)

 

제1독서 이사야 49,3.5-6
제2독서 코린토 1서 1,1-3
복음요한 1,29-34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의 인상은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어요. 코는 넓고, 입술은 두꺼웠습니다. 그리고 눈은 매우 작았습니다. 더군다나 팔다리는 키에 비해서 무척이나 길었지요. 바로 이러한 외적인 외모 때문에 소년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흉한 모습으로 태어나게끔 한 부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차츰 이 소년은 문학에 대한 재능을 조금씩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소년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지요. 그는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대신 자신의 이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실제로 어른이 되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누구일까요?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누구는 많이 가지고 있고, 또 누구는 적게 가지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그 차이가 삶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사람일수록 지금이라는 현재를 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내쳐서 지금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기에 남과는 다른 재능을 주셨다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나를 창조하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들은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의 크기와 그 수를 줄여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이러한 증언을 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느님의 어린양 모습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즉,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억울한 모습과 세상에 새 활력을 일으킬 하느님 종의 모습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지요. 그보다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받으시는 동시에 이 세상에 새 활력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렸던 메시아의 모습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하는 엄청난 불충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을까요? 아니면 그냥 느낌에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세상의 어떤 악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갖출 수가 있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시련에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합니다. 부족한 나의 믿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길 기도합시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늘에 충실하라(김중근, ‘네 안에 있는 최고를 발견하라’ 중에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에 탐닉해 비밀 결사대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스물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영화 50℃나 되는 추운 겨울날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형장에는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 묶였다.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였다. 사형 집행 예정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 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5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28년간을 살아왔지만 단 5분이 이렇게 금쪽같이 생각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어디에 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형장에 같이 끌려온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데 2분을 쓰고,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2분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1분은 자연을 한 번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려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28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 헛되게 느껴졌다.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고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왔다. 황제의 특사령을 갖고 왔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가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그는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을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시간을 금쪽같이 아끼고 최선을 다해 살면서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만약 당신이 사형 선고를 바고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고 있거나 불치의 병에 걸려 살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삶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남은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겠노라고 다짐하겠는가? 이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야말로 현재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장 정확히 말해 준다.

최후의 날처럼 중요한 날이 없고, 최후의 날처럼 뜻 깊은 날은 없다. 오늘을 평범한 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은 비범한 날이요. 위대한 날이요, 행복한 날이다. 오늘에 감사하고 충실하자.
 

 
 
 
The Promise / Secret Garden
All about loving You - Bon 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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