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6 조회수67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8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When you enter a house,
first say, 'Peace to this house.'
If a man of peace is there, your peace will rest on him;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Lk.10.5-6)
 
 
제1독서 티모테오 1,1-8
복음 루카 10,1-9
 
 
우리 성당의 초, 중, 고등학생들이 내일 모두 스키 캠프를 떠납니다. 100여명이 되는 학생들이 함께 떠나는, 우리 본당에서는 처음 있는 스키 캠프이지요. 사실 요즘에는 이 스키를 많이 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스키는 고급 운동처럼 여겨지는 만큼 아이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 캠프를 작년에 기획하여 차분히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본당의 스키캠프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나오면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다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일미사와 교리를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면 성당 보조를 100%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신 3번까지 결석할 경우는 60% 지원을, 그 외는 10%의 지원만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결석했더라도, 평일미사와 성시간에 참석하면 그 결석을 메울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내세웠지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정말로 열심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숫자도 늘었습니다. 평일미사와 성시간에 참석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흐뭇해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것으로 아이들을 성당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당에 열심히 다니면 그만큼 좋은 일도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성당에 많이 모인다면, 이로써 성당이 지루한 곳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교리교사들이 제게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 캠프를 위해서 열심히 홍보를 했고 벽에 출석부까지 붙이는 등 교우들에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성당 보조를 받지 못해서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가 성당에 나오지 않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지요. 그리고 어린 교리교사들에게 성당에서 보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보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분명히 학기 초부터 열심히 성당에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이제야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힘을 빼놓다니요. 그러나 이러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하는가? 아니면 힘을 빼는 말을 하는가?’

또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에서 사람들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평화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이 평화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평화는 그 사람에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즉,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평화를 빌어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몇몇 분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힘이 되어주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요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입니다.



남의 말에 좌절하지 맙시다.




죽음에게 배우다(고민수, ‘마지막 인생수업’중에서)

한 사업가가 유명한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가훈으로 쓸까 하여 좋은 글을 한 수 적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순서대로 죽을지어다.”라는 글을 써 주었습니다. 그 글을 본 사업가는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연유를 물었으나 빙그레 웃을 뿐이었습니다. 사업가는 어쩔 수 없이 글이 적힌 종이를 접어 가지고 내려왔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구석에 넣어 놓고 꺼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절친한 친구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 집에서 아들 부부와 손자손녀까지 같이 살았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된 것입니다. 사업가는 그때서야 스님이 적어 준 글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가족이 함께 살아가면서 태어난 순서를 거스르고 가는 죽음을 지켜보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내 호적 등본을 떼어 보면 사람이 태어나는 순서는 있지만 죽는 순서는 없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이 살아 계신데 20대의 큰 형이 가장 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매일, 일기처럼 유언장을 씁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오늘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내일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들은 나의 화난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바로 오늘 이 시간부터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The harvest is rich, but the workers are few.

So you must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workers to his harvest.

(Lk.10.2)

 

 

Whitney Houston - Run To You

Nothing`s Going To Change My Love For you - West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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