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심마니 집배원 . . . . . . .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30 조회수729 추천수18 반대(0) 신고
 
 
 

 

                                                          글:  도종환 [진길 아우구스티노]·시인

 

   제가 있는 산골집에

   우편물을 전해주러 오는

   집배원이 있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 골짝을 찾아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냥 가지 않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고개를 넘고 밭둑을 지나고 비포장 산길을 달리면서

   우편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갑니다.

 

   제게 편지를 가지고 오면서

   어떤 날은 까만 오가피 열매를 따오고 산도라지도 캐 옵니다.

   어떤 날은 칡꽃을 따가지고 와서

   칡꽃이 어디에 좋은지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갑니다.

   전봇대 받침줄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이 산마의 줄기인 걸 가르쳐 주고

   산마는 가을까지 기다렸다가 캐야 한다고 일러 주고 갑니다.

   내가 농사일에 서툰 걸 보고는

   고추 순을 따주고 자두를 솎아 주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저한테만 잘하는 게 아니라

   산골에 묻혀 사는 노인들한테도 그렇게 합니다.

   몸이 아픈 할머니가 있으면 약도 사다 드리고 편지도 읽어 줍니다.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은 노인들이 읍내 나가기 힘들어하면

   자기가 되가지고 가서 내 주고

   다음 날 영수증과 잔돈을 가져다 줍니다.

   할아버지들이 농약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농약도 사다 줍니다.

   학교에 배달을 갈 때는 주머니에 사탕을 넣고 가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줍니다.

 

   산삼을 캐서 몸이 아픈 노인들과 이웃에 나누어 줍니다.

   지금까지 그가 병든 이웃들한테 나누어 준 산삼은 수십 뿌리가 넘습니다.

   박봉인 집배원 봉급을 생각하면

   산삼을 팔아 살림에 보태야 할 터인데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나누어 줍니다.

 

   우리는 내가 가야 할 곳까지 곧장 갑니다.

   목표한 곳까지 한눈팔지 말고 갔다 와도

   늘 시간이 모자라는 삶을 삽니다.

 

   집배원 역시 누구 못지않게 바쁜 직업입니다.

   그런데 이 집배원은 자기가 가야 할 곳까지 가는 동안

   그들에게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갑니다.

 

   그래서 가다가 오토바이를 멈춥니다.

   그리고는 약이 되는 열매를 땁니다.

 

   가다가

   이웃을 생각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점이 그와 우리가 다른 점입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생각하며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오른 편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난 행운과 기쁨을

   남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이 하실 일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네 이웃을 위해 착한 일을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고

   하느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를 심마니 집배원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귀한 사랑을 캐서 나누어 주는 심마니 집배원.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