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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31일 야곱의 우물- 마르 4, 21-25 묵상/ 안면보시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31 조회수519 추천수7 반대(0) 신고

안면보시(顔面普施)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르 4,21-­25)
 
김현숙 수녀(노틀담수녀회)
◆등불! 빛은 밝음과 따뜻함 그리고 확산의 속성이 있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스스로 퍼져 나간다. 이는 다른 사람을 비추기 위해서다.
지금은 옛 정취로 남아 있는 호롱불. 학창 시절 늦은 귀갓길,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 집 대문에서 비쳐오는 불빛만 보아도 긴장했던 다리의 힘이 확 풀리며 안도의 큰 숨을 쉬곤 했다. 그리도 밝게 빛나던 등불이 이젠 대낮에도 어느 사무실이나 켜져 있건만 밝음과 따뜻함을 쉽게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빛이 내 시야와 가슴에 담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빛의 강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안목이 더 높아지지 않고 인정이 메마른 탓일까? 스스로 누군가에게 빛을 밝혀주려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도 없고, 또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는 부유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다만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무언가 나누어 주려는 마음보다 앞서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나눈다고 할 때 좋은 것, 나눌 만큼 풍요로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또 앞서기 때문이다.
 
언젠가 상담 워크숍에서 자신의 life story를 나눈 기억은 아직도 내 영혼을 흔든다. 한 자매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장기를 기증하듯이 자신의 상처를 나누겠다고 하면서 아픔과 수치로 점철된 자신의 깊은 생채기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아픈 과거와 현재를 우리에게 선물로 나눈 것이다. 나는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생각했다. 자매님을 통해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아픔과 결핍을 서로를 위한 선물로 나누게 되었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간증(干證)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보시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위하여 자신을 선물로 기꺼이 내놓는 것임을 배웠다. 보시 중에 으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안면보시(웃는 얼굴)라고 했던가! 나의 아픔과 상처를 나눌 수 있다면 밝고 따뜻한 등불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등불처럼 환하게 웃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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