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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22) 찌그러진 모과 물병 하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4 조회수58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3년12월30일화요일 성탄 팔일축제 내 제6일    ㅡ요한1서2,12-17;루가2,36-40ㅡ

 

       (22) 찌그러진 모과 물병 하나

                              이순의


ㅡ너무 늦은 관심 ㅡ

그녀가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현관문을 막 들어서는데 코딱지만 한 거실 겸 주방 바닥에 제 멋대로 찌그러진 페트병 하나가 희뿌연 액체를 담고 서 있다. 그녀 자신이 칩거를 하기로 마음먹고 지내는 동안에는 누가 찾아  오는 발길이 거의 없는데 누가 다녀갔을까? 만져 보니 아직 뜨거운 기운이 가시지 않고 따뜻하다. 분명히 뜨거운 물을 부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페트병은 몸부림을 하다가 뜨거운 화상의 흉터를 남겨 버린 것이다.

 

 

방문을 열고 아들아이에게 누가 왔었느냐고 물었다.

"할머니께서 기침약이라고 모과 물을 끓여서 가져오셨어요. 엄마 주라는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안하시고 그냥 가셨어요."

그녀의 시어머니께서 실로 오랜만의 발걸음을 하신 것이다.

 

그녀가 지치기 시작하면서 사람을 겁내기 시작 했고, 사람이 겁난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가 차단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면으로는 세상과의 단절이기도 했다. 그녀는 시어머니만 못 오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친정어머니도 못 오시게 함으로써 양심안의 평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결국 두 어머니를 거절함으로써 신앙과 삶의 모든 것을 자기 안에 가두기 시작 했고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마저도 차단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의 시어머니가 다녀간 것이다. 그 찌그러진 페트병에 담긴 미지근한 모과물이 급하신 어머니의 마음 같아서 처량 맞게 보였다. 그리고 회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부잣집 막내딸이 영등포 단칸 쪽방의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시집오던 날, 그 방에는 새댁이 들어 설 자리가 없을 만큼의 시댁 식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너무나 낯이 설은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가난이라는 걸 상상만 해 본 터라서 그냥 가난한가 보다고 짐작 되었을 뿐 체감하지는 못 했다. 새댁이 준비한 선물을 친척들은 하나씩 받아들고 한 분 두 분 돌아갔다. 방 안은 이내 빈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새댁은 시댁에서의 첫 밥상을 받았다. 그러나 새댁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친정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밥상에는 국 한 그릇 없는 깍두기 김치 한 종지와 콩나물 한 접시, 그리고 밥 두공기다.

 

민망한 새신랑인 그녀의 남편이 ’결혼식 날 식당에서 쓰고 남은 음식도 없수?’ 라고 한마디 하면서 그 부부의 삶은 시작 되었다.


세상의 기준이 어느 만큼인지 가늠하지 못 할 만큼 유복하게 자랐고, 자원봉사의 삶에서도 일정기준이 주어지는 시설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녀가 그녀의 남편에 대해 한 치의 의심을 해 보지 않은 것은 무모하리만큼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마냥 자원 봉사자로 늙어 죽을 딸아이가 답답해서 친정어머니는 ’우리 딸은 평생 하느님만 믿는 신랑이면 된다.’ 라고 신랑감을 고르셨고, 남편 되는 사람은 진짜로 장가들려고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았고, 그녀의 신앙 때문에 세례까지 한 사람을 하느님의 양심으로 외면 할 수가 없는데다 더 이상 친정어머니께 불효녀가 되고 싶지 않아서 해 버린 결혼이었다.

 

십이삼 년을 살고 난 그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만 살기에는 자기 자신이 죽을 거 같았다.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자식이 있었다. 그녀가 생산 해 놓고 변변한 입성하나를 못해줘서 헌 것만 헌 것만 입히고 살아온 자식이 남들이 다 가는 학원 한번을 못가고 훌쩍 자라있었다. 돌아보니 어미로 살아온 인생이 아니라 며느리로만 형수로만 살아오면서 어린 제 자식에게는 인내를 요구해야만 했었던 인생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세월이 사람을 익숙하게 했을까?! 그들은 받는 것은 당연하나 도리는 없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무엇을 옳게 판단해야 하는지 식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만 살고자 했을 때 친정어머니는 인생이 장애자인 남편을 장애자라고 여기며 살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전혀 장애자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은 강산이 변하고 남아버린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국 정신없이 살아내고도 욕을 먹는 이 밑 빠진 독의 맏며느리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식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냥 식충이처럼 살고자 독심을 먹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자식에게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녀의 불우이웃이 아니라 그녀가 그들의 참으로 불쌍한 불우이웃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비난만 무성해 졌다. 그들 속에서 초라해 지는 분은 어머니셨다. 맏며느리의 자리는 곧 어머니의 권위였던 것이다. 그 맏며느리가 맏며느리의 자리를 감당하기를 거부했을 때는 누구도 어머니의 설 자리를 마련해 두지 않았다. 그토록 빈곤한 어머니의 남은 여력마저 뜯어가고, 긁어가고....... 볼품없어지는 어머니! 늙어 가시는 어머니!

‘왜 그걸 모르셨습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어머니의 짐을, 어머니가 낳은 어머니 아들의 짐을 지고 가는 그 며느리의 마음에 한이 서리리라는 생각을 왜 못 하셨습니까?’

 

그녀는 찌그러진 모과 물병을 보면서 시집오던 날 어머니가 마련한 첫 밥상을 떠 올렸다.

"이 집의 종손 맏며느리에게 멸치 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주지 못한 것은 가난이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무지가 자식을 낳았을 뿐, 길러 내지 못한 정성의 빈곤 입니다. 주님을 믿었기에 삶이 가능했었던 저는 어머니의 맏자식만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다른 자식들도 저 만큼 살게 해 놓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그릇을 깨뜨려야 하셨던 어머니께 아직도 제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저도 우리 엄마 아버지의 귀하디귀한 자식이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저는 이제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고등학생이 된 제 자식에게 학원이라도 보내 주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그녀의 올케 언니로 부터 올해는 친정어머니 생일에 좀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 해 버렸다.

"하늘이 내게 준 복이 이것뿐인데 이것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당분간은 참으리다. 사람이 사람의 구실을 못한다면, 짐이 되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은총이라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오빠한테 짐이 되지 않고 살면 그게 은총이라고 여깁니다. 새언니가 엄마를 잘 모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녀가 병이 들어 기침을 하고 토혈을 한다는 소식을 늦게나마 들으셨던 모양이다. 시집오던 날 멸치 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 주셨더라면. 아기 낳았을 때 미역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 주셨더라면. 병원에 수술하고 누웠을 때 문병이라도 한 번 오셨더라면....... 수 없는 어머니의 밥상과 시동생들의 밥상을 마련하면서 마음에 남아버린 아쉬움이었다.

"어머니, 모과를 끓여서 식히실 시간도 없이, 급한 마음으로 페트병에 화상을 입히신 간절한 관심은 너무 늦었습니다. 어머니도 이제는 저걸 끓여오실 이유가 있을만큼 늙으셨지만 이제는 제가 지쳐버렸어요."

 

그녀는 그녀의 억척으로 얻어질 수 없는 주님의 자비를 기다리고 있다.

 

ㅡ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여러분의 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요한1서2,1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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