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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지향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4 조회수600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지향
             이순의
 
 
 
겨울 찬 바람이 아파트 언덕 아래로 휘돌고 있었다.
그 축대 밑 양지에 허름한 노점을 열고 앉아 하루를 사는
노인의 눈 앞에 얼굴을 밀었다.
노인은 쉽게 알아보지 못하고 물끄러미 찬찬히 살펴보신다.
코 앞에 놓인 얼굴도 살펴봐야 알아 볼 만큼
이제는 늙으셔버린!
<옴마야. 이것이 누구당가. 워매 우리 막둥이가 뭔 일이랑가? 뭔 일이랑가? 생전을 살아도 오덜 안허는 막둥이가 워짠 일이랑가? 뭔 일 있는가?>
그제서야 알아보시고 시꺼먼 손을 내밀어 덥석 잡으신다.
 
 
 
 
 
 
 
큰 오빠가 저 아파트에 사실적에
조그만 함지를 놓고
큰오빠 몰래 노점을 시작하셨다가
'아들 얼굴에 똥칠을 하는 엄마'
라는
큰 아들의 역정에 그만두고
할 일이 없어서
평생을 일하시던 어른이
큰병이 나셨었다.
돌아가실 것 같은 어머니 때문에  
'죽지만 말고 어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백기를 들어버린 쪽은
큰 오빠셨다.
다행히
손자들도
저러시는 할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린 손자들도 결혼을 하고 
증손자도 보시고
일흔아홉 왕할머니가 되셨는데 
이사를 가셔서 멀어진 저 곳까지
매일 새벽이면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하신다.
 
<엄마. 막내딸이 왔으니까 하루 쉬시지.>
그러나 노인에게는 지향이 있었다.
 
<아니여야. 가문에 빛을 내주고, 장관을 몇 번이나 헌 장조카가 선거에 나온다는디 작은엄마로서 그냥 말 수가 없다. 즈그덜 어렸을 때처럼 어른들이 살아계셨으먼 얼마나 좋을 것인디, 인자 어른이라고는 큰엄니 빼고는 둘째 작은아버지허고 작은 엄니, 그라고 나만 남었는디 어쭈고 그냥 말은다냐? 옛날허고 달라서 선거가 법이 까다롭다고 허니께 조심허니라고 벌벌 떠는 세상인디, 작은엄마가 장조카헌티 후원금 내는 것은 안 잡을 것 아니냐?! 그랑께 그 목적을 두고 일을 헌다. 한참은 일허러 나오기 싫어서 죽것드라. 그래서 쉬어뿌렀는디, 장조카 후원금 줄 욕심이 생긴께 재미지고, 아픈디도 없고, 다리도 가푼가푼 해야. 그랑께 오랜만에 막둥이 딸이 왔어도 못 쉬것다. 선거 시작허기 전에 몇 푼이라도 벌어야 안 쓰것냐. 볼 일 보고 가그라 잉.>
 
 
그렇게 어머니는 큰오빠네 현관문을 열고 새벽 어둠으로 향하셨다. 그 지향이 밝은 가로등 불빛이 되어 길을 인도하시는!
 
치매 안 걸리고 다니시니 그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데, 지향까지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시려는 저 희망이 가문의 밑거름이요, 반석이며, 광영이었을 것이다.
 
 
 
 
 
 
<광주 5,18묘지 참배>                                                                  -사진은 선거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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