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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26) 성당에서 온 전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7 조회수51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4년1월2일금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ㅡ요한1서2,22-28;요한1,19-28ㅡ

 

    (26) 성당에서 온 전화

                       이순의

                  


ㅡ가출ㅡ

지난해의 마지막 밤을 동네의 PC방을 돌고 있었다. 메케한 담배연기와 의자 등받이에 눕다시피 한 사내들과 간혹 얼빠진 듯이 끼워 앉은 여자들 틈을 슬쩍슬쩍 곁눈 짓을 해 가며 오직 한 얼굴만을 찾고 있었다. 세상에 육십억 인구의 얼굴이 모두 필요 없는 밤에 오직 얼굴 하나만을 찾으며 이 건물 저 건물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뒤지고 있었다.

 

처량 맞았다. 내 자신이!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가 생각해도 내가 당장 그 시간에 지은 죄가 없었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주님 뜻이것제. 주님 뜻이것제. 내 맘도 내가 어쩌지 못 하는데 나가버린 자식을 하느님도 아닌 인간인 내가 어찌 찾것다고!"

 

몇 곳을 가지 못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다. 한 해의 첫 날을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멀리 출타 중이었던 남편이 돌아 왔다.

"당신아들 저녁 여섯시도 안 되서 가출 했어."

남편은 엉뚱한 대꾸를 했다.

"밥 줘. 배고파."


오랜만에 집에 오신 남편을 위해 열심히 밥상을 차렸다. 남편은 달다고 밥을 먹는다. 나는 마냥 멍청히 앉아 있었다. 남편의 심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걱정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침묵이 흐르고 적막만이 주인공이 되어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었다. 목구멍이 타고! 입술이 쩍쩍 갈라지며! 뼈 속을 파고드는 침묵을 깬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여기 성당에 중고등부 교감인데요. (**)가 티셔츠 하나에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성당에 있는데 좀 오시겠습니까?"

너무나 간절한 반가움이었다.

"저하고 싸웠는데요. 제가 갈 때까지만 좀 지켜봐주세요."

허둥대는 나에게 양말과 외투를 챙기라는 남편의 지시를 듣고 집을 나섰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약한 인간이 무슨 능력으로 자식을 키운다고 방편이 서고 대책이 서겠는가?

"주님 뜻이것제. 주님께서 해결하실 일이 있으시것제. 주님께서 시킨 대로 해야지, 내가 무슨 능력이 있것는가?"

 

성당의 밤 열시는 고요했다. 만남의 방에는 기척이 없다. 사무실 불빛이 환하다. 다른 날 같으면 이 시간에 사무실은 컴컴하고 문이 잠겨있어야 한다. 성당 로비에서는 걱정으로 애가 달으신 교감선생님께서 맞으신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사님께서 예민한 침묵으로 앉아 보초를 맡고 계신다. 나를 본 아이는 순간적으로 튄다. 젊고 기운 좋으신 두 분이 막았다.

 

"야 이 새끼야. 잠바입고 양말신고 돈 줄테니까 더 멀리 나가 이 새끼야."

가져간 외투와 양말을 던져 주며 지갑에서 만원지폐 두 장을 꺼내서 주었다.

"너의 팔자가 오늘로 거지팔자니까 나가. 이 새끼야. 부모가 돈 주고 밥 주고 학교 보내주고 호강에 초 처서 할 짓이 이것 밖에 없냐? 이 새끼야. 너 같은 자식은 내 인생에서 없는 셈 칠거니까 나가고 싶은 대로 나가 .이 새끼야."

 

아이는 대꾸 했다.

"그럴거면 뭐 하러 데리러 왔어?"

"너는 왜 성당으로 왔는데? 너가 가출을 할 거면 모르는 데로 가야지 왜 아는 사람있는 데로 와서 전화하게 하는 거야? 이 새끼야. 너 모르는데 더 멀리 가출하란 말이야. 이 새끼야. 아빠가 오랜만에 집에 오셨는데 불쌍한 아빠한테 너가 이럴 자격이나 있냐? 이 호로 새끼야. 자식은 부모한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부모는 자식한테 그렇게 못 하는 거야. 이 새끼야. 너 갈 거면 옷 입고 양말도 신고 돈도 가지고 아주 더 멀리가란 말이야. 이 새끼야."

 

선생님은 진땀을 빼시고 아이는 글썽거리기 시작 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요?"

너무나 정통으로 어미인 내 마음의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너는 지금 내 마음을 알아서 이러고 자빠졌냐? 이 새끼야. 내 인생 마흔 다섯을 살도록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을 아직 한명도 못 찾았다. 이 새끼야. 부모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더라. 이 새끼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인간을 세상에서는 못 찾는 거야. 이 새끼야. 그래서 신앙이 중요한 거야. 이 새끼야."

 

교감선생님께서 극단의 화살을 던지셨다.

"그럼 아이를 안 데려 갈 겁니까?"

한 마디로 대답했다.

"지 인생이니까 지가 결단을 내려야지 제가 어떻게 데려갑니까? 너 갈거야? 말거야? 안 갈 거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 집에 가야해"

아들은 집에 갈 거라고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부탁과 함께 내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미사에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학사님과 선생님께 부모로서 정말로 면목이 없는 인사를 하며 아들이라는 실로 무겁고 덩치 큰 혹을 달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집 모퉁이에 들어서는데 아들이 어리광을 부린다.

"엄마아! 미야안 해~에~ㅔ"

그게 자식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조건이 없는 아버지 이셨듯이, 나도 내 자식에게 조건이 없는 엄마다. 키 작은 엄마가 아들의 품에 쏙 안겨져 버렸다.

"엄마는 PC방만 돌아 다녔네. 감기 걸리면 어쩔라고?"

이놈은 예수님께서 소년시절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한 말씀으로 응수를 놓았다.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왜 모르셨습니까?"

자식의 가슴팍을 뿌리쳤다.

"미친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대충 넘어갈 어미가 아니질 않는가!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한마디로 모든 걸 제압하셨다.

"집 나가면 들어 올 때 창피한 거야. 임마! 다음에는 갈데없이 창피한 짓 하지마라. 집은 함부로 나가는 게 아니야! 쨔아~식아!"

 

TV에서 종각의 타종이 시작 되었을 때 선물로 받아 놓은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새해 기도를 드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새해 새날의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를 쏟고 말았다. 불과 몇 시간 전의 헌 날에 대하여 말은 없었지만 서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쏟고만 있었다. 하하하하하

<내 아들이 맨발로 갈 곳이 주님의 집이었음에 감사하고, 방황하는 아들을 지켜주신 선생님과 학사님이 계셔서 더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을 향해 어찌 나 혼자 내 아들을 키운다고 자만 할 수 있겠는가?! 주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주님의 품으로 피난처를 삼았던 아들은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미사에 다녀왔다.

 

ㅡ그러나 여러분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신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그리고 그분은 진실하셔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시오.요한1서2장,27-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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