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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식일이 뭐길래-배영호 신부님 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9 조회수741 추천수6 반대(0) 신고
 

 

 

 오늘 독서는 안식일에 대해 '거룩한 날' '존귀한 날' '기쁨의 날'이라 표현한다.

신약에서는 걸핏하면 안식일 논쟁이 일어난다.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그에 대해  알려주는 배영호 신부님의 글이 너무 명쾌하고 아름다워 가져왔다.

 

 

 

 

 

도대체 안식일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자주 언급되고, 그토록 자주 시비가 일어나는 걸까?

안식일에 대해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1. 창조의 축제

 

인간의 조성과 번성에 관한 축복으로 절정에 이른 6일은

하느님께서 작업을 완성한 제7일을 지시한다.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

그러나 쉬셨다는 말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창세 2,3)고 전한다.

하느님은 조물을 향해 자애롭게 바라보고 다가가 복을 내렸던 것이다.

“쉬셨다”는 말은 말하자면 하느님이 일을 안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 역시 뜸을 들이고 숙성되기를 바라는 본연의 창조 작업이었던 것이다.

복을 내렸다는 말은 생명활동을 재촉하고 제안하셨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이 일곱째 날은 거룩하고 복된 날, 정중동의 날이 된 것이다.

함축적으로 베풀어지던 축복이 이 일곱째 날에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창조,

즉 생명 잔치는 절정에 달했다.

안식일은 창조와 생명을 경축하는 축제일이다.

이날 생명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에게도 안식일은 없는 것이다.

내가 내쉬는 따스한 숨을 타고 하느님의 숨결을 확인할 수 있는 그 기쁨을 갖는 것,

그게 죽은 자들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이다.

 

2. 세상의 성화(혜셸)

 

안식일은 일주일의 이렛날을 가리키는 명칭 이상을 뜻한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바로 이 세상에 사신다는 그 점으로 인해

이 세상이 평화에 사로잡히는 날, 하느님의 축복이 가시화되는 날이다.

엿새 동안에 만들어진 것들은 모두 좋은(善) 것이지만 이렛날은 성스럽다.

안식일은 영이 우주보다 더 크고 선(善) 너머에 성(聖)이 있음을 확신하고 실현하는 전례의 날이다.

식일은 문명과 사회적 성취와 불안에서 벗어나 독립을 경험하는 날, 평온, 평화, 고요의 날이다.

안식일에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환경을 공격하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않아

하느님과 조물의 훌륭한 시간과 장소가 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안식일을 지내는 것은 세계를 긍정하면서도 세계에 노예가 되지 않는 것,

문명의 한 부분이면서도 문명을 넘어서는 것,

시간과 공간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을 성화하는 것,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인간의 평등성이

곧 인간의 고귀함을 의미한다는 믿음을 구현하는 것이다.

무엇이 안식일인가?

평소 우리가 애써 쌓아 왔고 분별해 온 것들의 의미가 무효화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똑같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주인과 노예, 부자와 가난한 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차별을 지워 버리는 날이다.

그러기에 인류의 미래는 안식일이 문명의 정신에 얼마나 많이 침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3. 신약의 수정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시간의 핵, 한 주간의 중심이자 시간의 중심이었다.

한 주간을 완료하고 다음 한 주간을 새롭게 시작하는 날,

시간의 끝이요 시간의 시작인 날이다.

동시에 안식일은 압축된 한 주간이었다.

그러기에 이 날을 의미 있게 지내면 한 주간을 그렇게 지내는 효과를 얻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할례와 함께 유대인의 외적 표식으로서

유대인의 정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적 틀이었다.

“안식일이야말로 유다이즘의 영성이요 대강(大綱)이다.”

그 때문에 그날을 더럽히는 것을 보면 의분이 솟구치고,

그날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았다는 안식일 규정도 알고 보면

제대로 잘 지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물론 예수께서도 안식일의 의미에 관하여 무관심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안식일은 원래 세상과 현재에 대한 기쁨과 성화의 축일,

긍정과 적극성을 띤 축일이지 많은 수의 금지령으로 인해 압박을 받는 날이 아니었다.

원래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던 개념이

도리어 인간을 억압하고 참된 인간의 가치를 빼앗는 경우가 있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던 가장 합리적인 이성적 논리에 기초한 논의들이 어느 사이 왜곡되어서

그 개념과 논의의 주인인 ‘인간 자체’를 말살하는 억압기제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 안식일이 이 경우가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변질된 안식일 규정과 체계에 철퇴를 가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의 ‘인간이 중하다’라는 호통의 의도였던 것이다.


4. 안식일의 완성, 부활

 

빠듯하게 일하고 숨이 찰 때 맞이하는 안식일은 유머, 곧 여유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안식일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완성된다.

죽음이야말로 인류에게는 막다른 골목, 가장 철저한 원리주의적인 상황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외 없이 죽음에 처한 인류에게 돌파구를 마련하고

그를 넘어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낳았다.

삶에 끝없는 여유를 주었다는 점에서 그분의 부활은 안식일의 실현이요 완성이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최대의 유머이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거쳐 우리에게는 주일로 옮겨져 있다.

주일은 바로 예수님의 앞선 부활을 우리 안에서, 내 안에서 현실화하는 날이다.

한 주간 자신에게 골몰해 있었다면 적어도 이 날에는 다른 이를 위해 존재할 필요가 있다.

 자기를 상대화하고 남을 중시함으로써 잊었던 여백을 회복하는 날이 주일이다.

주일은 각축전을 벌이는 평일과는 달리 존재 자체에 잠심하는 날,

노는 날 혹은 소비하는 날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날,

그럼으로써 영성의 강화와 창조의 터전으로 맞이하는 날이다.

 

 

 


Puccini: Un Bel di Vedremo / 푸치니 (나비부인)중 '어느 갠 날'

사진은 오래 전에 다음의 어느 카페에서 퍼온 것인데...어떤 분의 것인지 모르겠네요. (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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