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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각 복음사가의 관점으로 본 유혹사화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0 조회수50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일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악마로부터 유혹을 물리치신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유혹사화는 공관복음서에만 나와있지만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에서 승리하셨다는 요점만 짧게 나오고,

마태오와 루카에서는 유혹 받은 내용도 나오는데 둘째와 셋째의 유혹의 순서가 다르다.


어떤 분은 우연히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각 복음사가의 신학적인 관점과 의도를 생각하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순서라고 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이방인들에게>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썼다.

즉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복음서다.


마르코 복음에는 구마(驅魔)의 기적이 세 복음서 중에서 가장 많으며,

예수님의 첫 번째 활동도 구마의 기적이었다.


즉 예수께서는 세상을 악에서 구해내러 오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리기위함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혹사화를 보면,

예수께서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분임을 간단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어떤가?


마태오는 <유다인들에게>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려 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 역사의 전 과정 안에서

그들이 고대하고 있던 메시아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유혹사화를 이해하자면,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과거의 백성들이 실패하였던 유혹들을

예수께서는 당당히 물리쳐 승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즉 첫째 유혹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었던 대표적인 유혹이었다.

그들을 해방시켜 준 하느님을 원망하고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 싶게 만든 유혹이었다.

하느님은 그때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걸핏하면 야채까지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빵의 유혹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무력하기만 했다. 

그런데 허기진 예수께서는 빵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신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을 시험했다.

홍해를 건넌 감격도 잠시였다.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과연 선택을 받은 민족인지 확인 받고자

계속적으로 하느님을 시험했다.


주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보호하고 인도해주심으로써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이 맞다는 것을 확신시켜주셨다.


예수께서도 하느님 아들의 신분을 확인받아 보라고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단호한 말씀으로 악마의 요구를 물리치신다.


셋째의 유혹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최대의 유혹이었던 우상 숭배를 상징한다.

수시로 하느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벌로,

그들은 바빌론 유배라는 쓰라린 역사를 체험했다.


예수께서도 이 유혹을 받으신다.

그러나 경배 받으셔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라고 악마의 유혹을 일축하신다.


보다시피 마태오의 유혹사화 안에서의 결론은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위협했던 모든 유혹들을 이기신 참다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루카복음은 어떨까?


루카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예수께서 모든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제시하는 복음이다.

이는 아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 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따라서 마땅히 유혹사화의 구성도 달라진다.

즉 모든 인류가 접하게 되는 보편적인 유혹을 점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순서가 뒤집힌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첫째 유혹은 인간의 일차적인 욕구인 물욕(物慾)에 대햐여 말하고 있다.

이는 <인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유혹이다.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의, 식, 주, 재물 등에 대한 유혹 말이다.


둘째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유혹이다.

즉 지배욕, 권력욕, 명예욕, 사랑과 성적인 욕구까지도 해당한다.


셋째로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유혹이다.

물질을 마음대로 소유하고 동료 인간들을 마음껏 지배하려는 욕구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까지 자기 뜻대로 조정하고 싶은 유혹으로 비화된다.



마치, 창세기의 태고설화를 보듯이, 원조들이 저지른 죄악 하나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해치고,

마침내 동료 인간들끼리의 관계를 해치는 것으로 파급되면서

사물(자연)과의 관계까지 엉망으로 만든다.


창조 때의 조화로운 세계는 순식간에 부조화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부조화의 관계를 예수께서는 다시 하나씩 거꾸로 되돌려 놓는 작업을

유혹사화 안에서 진행하고 계신 것이다.


즉 삼라만상의 깨어진 모든 관계를 바로 잡아 회복시키는 분,

그 새로운 아담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원형인 아담이 실패했던 유혹, 즉 인류가 보편적으로 걸려들고 있는

대표적인 유혹 세 가지를 모두 승리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유혹사화다.

......................


한 때는 공관복음서의 내용 중에 겹쳐지는 것들을 걸러내어

한 권의 책으로 간추려 보려고 한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복음서마다 비록 비슷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고 해도

각 복음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이해하며 성경을 본다면 

예수님에 대한 보다 풍부한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매일 닥쳐오는 수많은 유혹들을

어떻게 물리쳐 나가는 것인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기에 세 복음사가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을 잊어선 안 된다. 

즉 예수님의 승리의 요인은 바로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이었다고 

복음사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도 그러할진대, 우리는 말해 무엇 하랴?

우리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유혹들을 자신의 의지와 힘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유혹을 끊어내려고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커다란 힘을 가지고 다가옴을 느낀다.

오히려 하느님 말씀에 밀착되어 있는 정도,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승패는 좌우된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자.



      (2001년 3월 5일에 써서, 수원교구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다시 손질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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