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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베트남 부인 -♤ - 이제민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1 조회수591 추천수10 반대(0) 신고
    ♤- 베트남 부인 -♤ 마흔이 넘은 마티아가 스무 살의 베트남 아가씨와 성전에서 혼인성사를 받았다. 몇 개월 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마티아가 베트남에서 부인을 데려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 “성당에서 혼인식을 해야지요.”하고 말했다. 그는 당황하면서 베트남에서 이미 결혼식을 했다고, 지금은 데려오는 수속만 밟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혼인성사는 물론이고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외국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러나? 그래서 사방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인가? 하고 지레 짐작하면서 한마디 했다. “살짝 같이 살면 안 돼요. 많은 사람으로부터 축하를 받아야 잘 살게 되는 거야.” 마티아는 베트남 신부는 신자도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 때문에라도 더욱 성당에서 식을 올리기를 바랐다. 같이 있던 사람들도 거들었다. 나는 혼인성사에 대해서 설명했다. 성당에서 혼인식을 하라는 것은 신자이기 때문에 교회법을 지키라는 요구 이전에 그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이며, 더군다나 젊은 외국여성이 낯선 땅에 시집와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주변의 관심과 하느님의 축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처럼 조용히 데려와 조용히 살고자 하는 것은 자칫 부인을 한국 사회에서 고립시킬 수 있고, 외로움의 성에 갇히어 우울증에 걸리게 할 수도 있다는 충고까지 곁들였다. 이것은 엄포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의 파괴이다. 그래서 또 당부했다. 부인이 한국에 오면 성당에 와서 많은 신자들과 사귀게 하여 한국 분위기를 익힐 수 있게 하라고. 그렇게 한국어도 배우고 문화를 익힐 기회도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물론 한국 문화(음식, 전통)만을 익히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문화(음식, 전통)를 배우면서 부인에게 한국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라고, 그래서 월남 음식 먹는 것부터 익히라고 했다. 이미 한국에 결혼해 와 있는 베트남의 부인들을 만나게 하며 부인에게 숨통을 열어주라고도 했다. 시골 본당에 있을 때 농가에 시집 와서 하루 종일 시부모 곁에서 외로워하는 외국인 부인을 보았기 때문에 나의 부탁은 더욱 간곡했다. 이런 만남이 차단될 때 부인은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고도 했다. 누가 그 병을 고쳐줄 수 있겠는가? 마티아는 우울증이라는 말에 약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리하여 그는 조용히 비공개적으로 살려는 마음을 접고 온 동네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성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날짜도 정했다. 그게 오늘이다. 모임에 함께 했던 빈첸시오 회원들이 반기며 점심은 자기들이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혼인문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신랑은 베트남어를 모르고 신부는 한국어를 모른다. 둘은 각각 한국어 베트남사전과 베트남 한글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생각과 마음을 교환한다. 사전을 찾아도 발음을 하지 못하기에 찾아낸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온갖 몸짓을 다 한다. 문서 작성 날짜를 잡아놓고 성산복지관에 전화를 해서 이미 결혼해 한국에 와 있는 한 베트남 부인을 통역관으로 불렀다. 그 부인은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와서 처음 만나는 고향 사람이었다. 통역으로 온 부인에게 베트남 식당이 어디 있는지, 베트남 식품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한국어는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 등을 가르쳐 주게 하고 서로 전화로 만날 수 있게도 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매달 한 번씩 있는 고국인의 만남의 시간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이 문서 작성이 순수한 종교예식임을 통역관을 통해 설명했다. “재혼은 안 된다.” “이혼은 안 된다.”하는 법적인 말들이 마치 “너 이제 한국에 결혼하여 왔으니 딴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하는 식으로 그 베트남 신부에게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서를 작성할 때 사랑이니 존경이나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신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기도 하였다. 스무 살의 처녀가 어찌 얼굴을 붉히지 않고 이를 낯선 땅 낯선 사람 앞에서 고백하겠는가? 신부의 집안은 불교신자라고 하였다. 통역하러 온 부인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베트남에서는 신부는 무조건 신랑의 종교와 관습을 따르기에 종교 차이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 말이 오히려 내게 약간은 서운하게 들렸다. 나는 종교가 다른 것이 결혼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면서 신랑에게 한국의 불교 사찰을 부인에게 많이 구경시켜주라고 하였다. 지금 당신네들은 인종과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다른 데도 결혼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싶은 말을 사전에서 단어들을 골라 나열하면서도 충분히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는가? 이 모든 차이를 무조건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다름을 받아들이며 이해하도록 하라. 그게 사랑과 행복의 보금자리이다. 하객이 대단히 많이 왔다. 애초 신랑이 빈첸시오회에 부탁한 음식은 30명분이었다. 나도 조찰하지만 가족적인 결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축가를 부른 성가대를 비롯한 우리 성당 식구들을 빼고도 200명이 넘는 하객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한월 결혼식에 이처럼 많은 하객이 문전성시를 이룬 적이 또 있을까? 빈첸시오회의 카타리나는 재치가 있는 부인이다. 그는 마치 자기 딸이 결혼하는 것 같다며 온갖 정성을 다해 결혼을 준비했다. 신부 화장도 예쁘게 하게 했다. 그 많은 사람이 왔는데도 음식이 부족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하객의 대부분은 신자들이 아니었는데 그들은 조용히 성전의 분위기에 젖어 새 가정을 축하를 했다. 신부의 키는 신랑보다 5센티 정도 컸다. 둘이서 입장할 때 제대에서 내가 신부에게 손을 약간 흔들어 보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부도 긴장을 풀며 활짝 웃었다. 강론은 신부가 한국말을 모르니 길게 할 수 없었다. 혼인문서를 작성할 때 신랑신부에게 한 말을 하객을 상대로 했다. 신부가 한국의 문화를 익히는데 도움 주기를 바라면서. 이는 신부의 문화를 사랑으로 익히려고 마음을 보일 때 가능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혼인 미사의 단골 독서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이다. 아담이 하와를 보며 외쳤다. 너는 내 살이요 내 뼈다. 서로 상대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가정이기를 기원했다. - 이제민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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