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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의 씻김 속에 계신 그분”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2 조회수552 추천수8 반대(0) 신고
 
 
“신비의 씻김 속에 계신 그분”
 
        
세례의 양식은 어느 세대에서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세례의 양식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기초 신학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어느 부분은 같다할 수 있으나, 또 어는 부분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를 보기로 하자.


민간신앙 안에서도 세례와 같은 양식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씻김이란 차원이 바로 오늘날의 세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물로 씻는 것, 씻김 굿 안에서의 씻김, 상징차원에서의 정한수가 주는 씻김의 의미 등이 그것이다.
 
특히 종교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에서의 세례양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있었다.
 
겐지스강의 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씻겨진다는 차원을 필두로, 물에 닫기만 해도 자신의 허물을 벗으며, 완전히 잠수와 목욕을 했을 경우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차원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런 씻김의 신비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민족 안에서 그대로 실현되어 왔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민간전승 안에서 내려오는 씻김 차원의 세례를 넘어서 우리에게 참 생명을 가져다주는 성사로써의 세례가 무엇인가를 보기로 하자.
 
세례성사의 제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현된다. 그리스도는 세례가 필요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준비와 하느님께 대한 예수님의 깊은 순명에서 나오는 겸손이 새로운 생명을 낳게 했고, 그 결과 세례성사는 축복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축복의 선물인 세례성사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세례자 요한의 준비는 대단한 것이었다. 세례자 요한까지를 볼 때 세례는 여러 양식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 형식의 틀을 깨는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것이다. 다름 아닌 회개를 외친 것이다. 그것은 이미 꽉 찬 구원의 신비가 어떤 것인가를 확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확실한 준비였다.
 
확실한 부모의 삶 안에서 성스러운 자녀가 탄생되는 것처럼, 털끝만큼도 남으랄 데 없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 안에서 하느님도 감동하심인가! 그 분은 지금까지의 물의 세례를 초월 소급해서 성령의 세례를 베푸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삶 안에서 자신의 겸손이나 사랑의 배려 없이 하늘의 은총을 받는 다는 건 무리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례를 받는다는 건 논리를 비웃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를 초월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생각이요, 우리와 다른 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늘의 기적을 그 분을 통해서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공짜로 기적을 바라지 말자.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 분도 공짜로 뭔가를 이루려하시지는 않았다.
 
적어도 요한의 절대적인 순명과 그분의 초월적인 겸손함이 닫혔던 하늘을 찬란한 오케스트라의 신비로 다시 열지를 않았는가?
 
내가 겸손하면서도 엄숙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하느님의 성령이 물을 통해 내려오던 그 때의 참 나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자. 그것이 바로 세례성사의 신비요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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