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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조론이냐 아니면 운명론이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2 조회수445 추천수2 반대(0) 신고
 

창조론이냐 아니면 운명론이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십자가의 길은
운명론인가 ?
아니면 창조론 인가?


매일의 삶이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선택의 길을 가고 있다.


선택은 창조론 인가?
아니면 운명론인가?


주먹이 우선 이냐?
법이 우선 이냐?


법이 있기에 사랑하는 것이냐?
사랑이 있기에 법을 지키는 것이냐?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겸손해야 하는 것이냐?


인간의 개성은
그 사람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개성은 신성불가침의 것이다.


그 개성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왜 ? 그 개성은 신성불가침의 것인가?

                        임 영준 신부  -광주 대교구-

생활묵상: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서 벗어나서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그 주어진 삶을 살더라도 천차만별의 삶을 살고 있다.


왜 그럴까?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생은 운명적인 것이 되고, 또는 창조적인 것이 됩니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에 따라 매일 매일의 삶을

창조적으로 활기를 찾고 용기 있게 새로움에 도전할 수도 있으나,


그저 주어진 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맡겨버리면서 운명적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대 전제 앞에

참으로 겸손하게 창조적 삶과 운명론적 삶의 조화를 유지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운명론적인가 아니면 창조론 적인가?


참고 인내하는 것이

벌어진 현상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운명론적이라 하지 않고

창조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인내하는 것에도

십자가의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인내한다는 것은

세상의 질서가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벌어진 사건들은 욕심과 자존심에 의해서

일어난 일들이므로,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극복하는 것이 바로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①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3-5)

②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2코린 6:4-7참조)

③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야고 5:11)

각 사람의 개성은

하느님께서 그에게만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바꾸려고도 하지 말고 비난하지도 말고,


있는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신성불가침이라는 말을 씁니다.


각자의 개성을

굳이 고집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번 사순시기를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돌이켜보고 참다운 회개의 기회로 삼아,

 

자신이 스스로 변화를 갖고자 하면

변화가 이루어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님!


저희가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참고 인내하면서 견디어가면서 주님이 마련하신

그 런 삶을 찾아내어서,

기쁨과 환희로 맞이할 수 있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우리가 살면서 자주 언쟁을 벌리기도 하고

야속해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화해의 은총도 주십시오.

화해로서 더욱 우정이 깊고 사랑이 깊게 하시어

이 세상의 삶을 기뻐하면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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