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 흉내내기 <14회> 형편없는 강론 -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3 조회수719 추천수11 반대(0) 신고
 

형편없는 강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루가 5,4)


   주일이 가까워질수록 강론 준비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강론을 쓴 후에 여러 차례 고쳐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때는 적절한 예화도 찾아내고 몸으로 느낀 체험도 담아 훌륭한 강론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강론대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한다.


   신자들이 이 강론을 듣고 크게 감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온몸으로 강론을 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신자들의 마음은 냉랭하기만 하다. 감동은 커녕 동감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미사 후에 강론의 효과를 점검해 보았더니 감동적 강론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 형편없는 강론이었다.


   어떤 때는 강론 준비가 잘 안 된다. 아무리 묵상해도 좋은 내용이 떠오르지 않고 적절한 예화도 찾을 수 없으며 해당되는 체험도 떠오르질 않는다. 주일은 다가오고 마침내 미사 시간을 다 되었는데도 이렇다 할 강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님, 강론 준비가 잘 안 되는데 도와주십시오." 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께 바짝 매달린다. 미사 직전까지, 심지어 미사 중에도 "주님, 도와주세요. 당신이 제 입을 통해 강론해주세요. 제힘으로는 강론을 못하겠습니다. 당신이 해주십시오." 라고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읽기 위해 독서대로 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주님께 도와 달라고 화살기도를 바친다.


   드디어 미사 시간이 되어 자신 없는 목소리로 강론을 마친다.


   그리고는 미사가 끝난 후에도 형편없었을 강론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자들의 반응은 뜻밖이다. 그 강론에서 크게 감동을 하고 회개를 하고 감사를 하며 기쁨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강론은 예수님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구구절절이 바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자신의 심장을 뚫고 마음을 움직이는 강론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 가지 터득했다. 내 힘으로 한 강론은 효과가 없었지만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하느님의 힘으로 한 강론은 큰 효과를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 준비했으니까 당연히 큰 감동을 주리라고 기대했던 그 강론은 사실 '나'라는 한 '인간'의 강론이었다.


   온갖 좋은 미사여구와 말재주와 지식을 총 동원해서 쓴 강론이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강론이었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도우심으로 주님의 힘으로 강론을 하니까 신자들이 감동했던 것이다.


   베드로 사도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했다. 그는 어부였다. 어부도 보통 어부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급 어부였다. 그런 베드로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이 오셔서 오른쪽에 그물을 던져보라고 충고하신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고기잡이 '고'(字)도 모르는 양반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 성서에 대해서라면 예수님 말씀을 따를 수 있다. 목수 일에 대해서라면 예수님 말씀을 따를 수 있다.목수 일에 대해서도 충고를 듣겠다. 그러나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도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그동안 쌓아 올린 노하우, 그동안 터득한 지식과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오른쪽에 그물을 쳤다가는 허탕을 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그동안의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예수님이 일러주신 방법으로 그물을 치느냐,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예수님의 방법을 무시하고 그냥 자신의 방식대로 고기를 잡느냐… 베드로는 큰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자신의 방식을 버렸다. 자기의 모든 경험과 지식과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방식을 택했다. 예수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오른쪽에 그물을 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내가 나의 실력으로 강론을 했을 때는 형편없는 강론이 되었지만 주님의 힘으로 강론을 했을 때는 좋은 강론이 되었다. 베드로가 자신의 실력으로 고기를 잡으려 했을 때는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주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때는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다.


   신앙이란 자기 생각을 죽이고 하느님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다.


   자신의 뜻이 아무리 옳아도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면 주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엄청난 은총을 체험할 것이다.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