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변 화 . . . . . . . .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8 조회수794 추천수14 반대(0) 신고
 
 

 
 
 
 
   병실도 여러 가지다. 
   혼자만 있는 병실, 
   둘 만 있는 병실, 
   세명, 6명이 있는 병실.

   혼자 있는 병실이 제일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있는(?)사람이 1인실을 쓰지만,
   혼자 있는 것이 좋아서 그런다기 보다,
   아무래도 문병오는 사람들이나 환자 격리를 위해
   1인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두커니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것도 답답한데,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주고 받을 사람이 없다는 건 참으로 외롭다.
   아프기까지 하니 더 외로울 것이다.

   어느 병원의 2인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병실 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어서 한 사람은 창가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꼼짝 없이 누워있기만 해야 하는데
   그나마 창가가 아니고 출입구 쪽에 있었다.

   창가에 누운 사람은 가끔씩 일어나 앉아서
   창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나게 이야기해주었다. 

  “저 청년은 매일 이 시간에 와서 아가씨를 바래다주고 가네요.
   오늘은 둘이 싸웠나 보네요.  분위기가 냉랭한걸 보니.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요.” 등등

   출입구 쪽에서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환자는
   바깥 구경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툭하면 창밖에 무슨 일이 없는지 좀 보라고 졸랐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자 문득!
   자기가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창가에 앉아있는 저 사람만 저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왜 저 사람 혼자만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있는가?

   일어나 앉지도 못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 창가에 있는 환자에게 질투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창가에 있던 환자가 급하게 숨을 몰아쉬면서 간호사 호출 버튼을 찾았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손이 닿지 않아서 버둥거리기만 했다.
   소리쳐서 간호사를 불러줘야 하는데도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다음 날,
   창가에 있던 사람이 중환자실로 내려가고
   결국 운명을 달리하고...
 
   얼마쯤 시간이 지난 다음
   자기를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다.

   창가로 자리를 옮긴 다음,
   억지로 내다 본 밖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시커먼 벽만 있을 뿐이었다.

   창가에 있던 환자와 누워있기만 했던 환자는 함께 있으면서 차츰 변해 갔다.
   창가의 사람은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였고,
   누워있던 사람은 질투심을 키우는 쪽으로 변해 갔다.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 사람은 남을 위해 기쁨과 즐거움을 더해 주는 일을 하였지만,
   한 사람은 자기 안에 미움과 질투만 더해 나갔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변화는 움직이는 것, 활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이상,
   다시 말해서 움직이고 활동하지 않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어차피 모든 것은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앉아 있는 모습에서 서 있는 모습, 걸어가는 모습,
   일하는 모습, 봉사하는 모습 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앞의 예에서 보았듯이,
   변화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그리고 좋은 변화를 이루려면 고통이 있게 마련이다 

   밋밋한 벽을 보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환자였기 때문에 쉬지 않고 한참 동안을 이야기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워 있던 사람이 가져야 했던 부러움은 창가에 앉는 특권이 아니었다.
   누워 있던 사람이 참으로, 또 실제로 겪어야 했던 부러움은
   어두운 벽만 있는 곳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거짓말쟁이 이야기 꾼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그 희생이
   누워있던 사람이 마침내 발견한 부러운 모습,
   정말 눈 부시게 화려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졌다.
   베드로는 그 황홀한 곳에서 아름다운 천막을 지어서
   천년 만년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잠깐 사이에 그 광경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은
   그분이 겪으실 죽음의 대가를 잠깐 보여준 것 뿐이다.
   화려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편안히 먹고 놀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남들만 괴롭힐 뿐이다.

   흔히 신자 분들이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드냐고 하소연 하는데,
   그것이 한 숨으로만 끝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힘들고 수고스럽고 때론 슬플 때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이 어땠는지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또 수고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부러운 삶의 모습,
   빛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눈 부시게 화려하게 변모한 예수님은 그 순간에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얼마 뒤에 있을 십자가 수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