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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벨탑(창세기11,1~32)/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1 조회수71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8년 2월 21일 목요일 창세기 11장

바벨탑(창세기 11,1-32)

 바벨탑은 육적으로 보면

홍수와 같은 물의 심판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았으나, 

영적으로는

우리들의 육신이 영적으로 자라지 않고 육적으로 자라면 육신의 장막이며,

우리 몸이 바벨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미사참례하여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야지,

성경 말씀을 떠나면 육신의 장막인 바벨탑이 되기 때문에

묵시록 18장에서는

음란의 포도주, 격정의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이 바벨론이고,

바벨탑이 되는 사람입니다.

말이 섞이고 영과 육이 섞인 것을 바벨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서는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아들들이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이

느빌림 즉 거인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바벨탑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고

영으로 되는 시간은 오랜 신앙생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탑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자라다, 높아지다, 교만하다'라는 뜻인데,

교만은 육적으로 볼 때

잘난 체하고 자기 자랑하는 사람을 교만하다고 하지만, 

영적으로는 아담 하와가 지은 원죄 때문에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속성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모두가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퓌시오'라는 말은 교만하다는 뜻인데,

이 말의 어원은 '퓌시스' 본성이라는 말에서 오는데,

우리들 마음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열매이며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하느님의 속성(성품)으로 변해야만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며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본성은 모두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선하고 겸손한 척하는 사람은 거짓 선한 사람입니다.

저는 교만하고 선한척 했던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선이 없고 내 자랑만 했던 사람이였습니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켜주고

잘못 결려온 전화도 친절하게 '잘못걸렸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말을 해주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며

바벨탑에서 출애급하여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내 마음 안에 내가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며,

오늘날에 바벨탑일 수 있으며,

내 마음 안에 어린 아이처럼 낮아지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으면,

바벨탑이 아니라 기도하는 성전이 내 안에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만은

주님의 도구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홍수에서 살아난 셈, 함, 야벳도 원죄가 있기 때문에

바벨탑을 만드는 교만한 죄를 짓기 때문에 말을 섞어서 일치를 못하게 하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으로 모든 민족이 베드로사도가 하는 말을

각자 자기나라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성령으로는 일치되지만 육에 있으면,

싸움과 전쟁이 일어나며 불일치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원죄가 있기 때문에 조금만 편한 생활을 하면 교만해지고

바벨탑을 우리들의 마음 한가운데 세우는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미사를 드릴 때

제일 먼저 죄를 회개하고 자비를 구하는 자비송을 바치는데,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자비의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바리사이들이 바치는 기도가 아니라,

세리들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내 안에 어떤 것이 바벨탑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나는 교만, 욕심, 잘난 체하는 바벨탑을 나의 안에 많이 짓고 있습니다.

 

1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2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시날지방에서 한 벌판을 만나

   거기에 자리잡고 살았다.

 

 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교니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설명: 벽돌은 진흙을 구워서 만드는데,

     성경에서 흙과 모래는 육을 상징하고 돌은 율법을 상징하며,

     산 돌(베드로 전서 2,4)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묵시록 21장에서

     보석과 진주는 예수님 말씀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심령 안에

     모래나,진흙이나 벽돌로 지은 육신장막이 되어서는 안되고,  

     성경 말씀으로 우리들 심령 안에 성전을 짓는 사람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고 기도하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5  그러자 주님께서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보시고

6  말씀하셨다. "보라. 그들은 한겨레이고 모두가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으리라.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가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8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버리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9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바벨(하느님의 문)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버리셨다.

설명: 바벨은 하느님의 문이라는 뜻이 있는데

      노아방주, 성막, 성소, 골방의 문을 말하며,

      골로사이서 4.3에는 말씀의 문을 상징하며,

      요한복음 10.1에서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구약에서는 노아방주, 성막, 성소, 골방의 문으로 들어가

       되지만 ,

      신약에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의 문으로 들어가서 말씀화가 되어,

      기도하는 성전이 되는 사람들이 성도들인 것입니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구약의 예수님의 족보이며 구원 역사임)

원시복음의 여인의 후손 계보는 구약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노아에서 셈으로, 셈에서 테라로, 테라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역대기상 1.1), 이삭에서 야곱으로,

야곱에서 열두 지파를 통하여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구원의 역사를

점진적으로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 생명의 책인 족보에 들어가야 구원 받은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1.1에서 

아브라함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가 이어지고

우리들 족보는 요한복음 1,12에서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말씀이신 하느님을 믿고 받아들여 말씀화가 되었을 때,

하느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다. 셈의 나이가 백 세 되었을 때

    아르박삿을 낳았다. 홍수가 있은 지 이 년 뒤의 일이다.

11  아르박삿을 낳은 뒤, 셈은 오백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다.

13  셀라를 낳은 뒤, 아르박삿은 사백삼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다.

15  에벨을 낳은 뒤, 셀라는 사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16  에벨은 삼십사 세 되었을 때 벨렉을 낳았다,

17  벨렉을 낳은 뒤, 에벨은 사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18  벨렉은 삼십 세 되었을 때 르우를 낳았다.

19  르우를 낳은 뒤, 벨렉은 이백구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20  르우는 삼십이 세 되었을 때 스룩을 낳았다.

21  스룩을 낳은 뒤, 르우는 이백칠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22  스룩은 삼십 세 되었을때 나홀을 낳았다.

23  나홀을 낳은 뒤, 스룩은 이백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24  나홀은 이십구 세 되었을 때 데라를 낳았다

25  데라(표백)를 낳은 뒤, 나홀은 백십구 년을 살면서 아들 딸들을 낳았다.

26  데라는 칠십 세 되었을 때, 아브람(큰 아버지, 믿음의 아버지, 만국의

    아버지란 뜻)과  나홀(사거리)과 하란을 낳았다.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

28  그러나 하란은 본고장인 갈대아의 우르에서 자기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

29  아브람과 나홀이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이고,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였다.

    밀가는 하란의 딸로서 이스가와 동기간이었다.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

31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갈대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잡고 살았다.

32  데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

 

이제 다시 창세기 12장에서

노아의 세 아들들인 셈, 함, 야벳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죄를 짓기때문에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십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세상에서 하느님께로

즉 육에서 말씀으로 거듭나야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는 예화를 들어서 구원과 심판을 계시해 주십니다.

더욱 성경 공부가 쉽고 재미가 있습니다.

구원과 심판의 길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들보고 천국문인 좁은 문으로 들어가겠는가?

심판의 문인 넓은 문으로 들어가겠는가?

자유 의지로 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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