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의 숙제" - 2008.2.21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1 조회수609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2.21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17,5-10 루카16,19-31

                                                                
 
 
 
"하느님의 숙제"


오늘 복음에서 어떤 부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숙제’는
그의 집 대문 앞에 있던 가난한 ‘라자로’였습니다.
 
어떤 부자의 구원이 달린 참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자는 하느님의 숙제인 라자로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누구나 한 번 뿐이 없는 인생, 이렇게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부자는 우리 모두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오직 자기만의 고립 단절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도 이웃도 없는 완전히 닫힌 삶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나 몸 건강으로나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도 이웃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대목만 보면 도대체 부자의 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데... 전혀 하자가 없어 보입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큰 죄입니다.

이웃과 무관한 고립 단절의 삶이 지옥입니다.

겉은 크고 화려하나 부자의 내면은 참 황량하고 천박해 보입니다.
영혼이, 영적 삶이, 내적 삶이 없는
완전히 육신만의 육적 삶, 외적 삶만 있어 보입니다.

그대로 1독서에서 이사야가 전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에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메마른 광야, 인적 없는 땅 같은 부자의 내면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신(物神)의 노예 되어 살 때
사람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 지 보여줍니다.
 
왜 이름 없는 ‘어떤 부자’라 했겠습니까?
물신에 노예 되어 자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참 나를 알게 되고 내 정체를 밝히는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자로 이름은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가난한 자가, 부족한 자가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자의 보호자시기에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하느님을 돕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을 찾는 가난한 자의 이름은 ‘라자로’라 했습니다.
부자는 이름이 없었지만
이 가난한 자에게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부자는 자기를 몰랐지만 가난한 자는 자기를 알았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내 정체성의 이름이 나옴을 깨닫습니다.
 
마치 1독서 이사야서 후반부 말씀이 라자로를 연상케 합니다.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마치 가난한 라자로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런 라자로의 진면목은
사후 아브라함 곁에 있는 모습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눈에는 누가 부자이고 가난한 자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라자로’는 어떤 부자에게 주어진, 그의 구원이 달린 하느님의 숙제였습니다.
구원의 열쇄와도 같은 라자로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자는 그의 숙제인 라자로를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구원의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과연 나에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라자로는 누구일까요?
자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목되는 말마디가 ‘큰 구렁’입니다.

어떤 부자와 라자로뿐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크고 작은 단절의 구렁이 있는 법입니다.
 
무관심, 불신, 미움, 불평, 불만 등으로 인한 단절의 구렁입니다.
 
부단한 사랑의 관심과 실천만이 이 구렁을 메워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은 당신 사랑의 성령으로
우리 사이의 크고 작은 구렁을 메워
당신 안에서 일치의 공동체를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행복하여라.”(시편40,5ㄱ).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