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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2 조회수89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Simon Peter said in reply,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Jesus said to him in reply, “Blessed are you, Simon son of Jonah.
For flesh and blood has not revealed this to you,

but my heavenly Father.

(Mt.16.15-17)

 

제1독서 베드로 1서 5,1-4
복음 마태오 16,13-19
 
 
어제 아침 9시 10분쯤 전화를 받았습니다. 병자성사를 달라는 전화였지요. 미사 하기까지는 50분 정도 남았으니 빨리 다녀오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허락을 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차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전날 어느 아파트에서 구역미사를 하고서 그곳에 차를 두고 왔습니다. 차 안에 병자성사 예식서가 있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었지요.

사무장님의 도움으로 그 아파트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차 앞 유리에 노란색의 이상한 스티커가 붙어있습니다. 외부차량이 불법주차를 했다는 경고 스티커였습니다. 이 스티커는 잘 떨어지지도 않데요.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대충 제거를 한 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이 길로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차가 많은지요. 또한 신호란 신호는 다 걸립니다.

아무튼 이비인후과 8층 67호라는 주소만 들고서 그 병원의 본관 8층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병실 중에 67호가 없습니다. 물어보니 이곳이 아니라, 옆에 있는 또 다른 병동이라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계단을 뛰어서 힘들게 8층까지 올라갔는데…….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다시 뛰어서 옆 건물로 이동을 했지요. 그리고 다시 계단을 힘들게 뛰어서 8층까지 갔습니다.

결국 병자성사를 주고서 다시 성당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10분. 10분 늦었습니다. 30분이면 충분히 다녀올 곳을 이렇게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다녀왔네요.

이 세상은 내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분명히 이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 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뜻을 주장하고, 내 뜻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다 내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잘못된 모습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뜻에 맞추어 사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말하는 바를 이야기하지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하면서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그리고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는 칭호는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예수님께 최고의 칭호를 붙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칭호를 원하지 않으셨지요. 그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정답이었던 것이지요. 복음서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부족함 그 자체인데 어떻게 이런 답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주님의 뜻에 맞추어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내 뜻만을 내세워서 사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주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주님께 정답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하세요.




가슴의 온도(‘좋은 글’ 중에서)

가슴 속에 감사함이 있습니까?
만약 가슴속에 감사함이 없는데도
놀라지 않는다면 마음의 병이 깊어진 것입니다.

"내가 원래 그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감사함이 없는 가슴은 차갑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가슴은 너무 추워서 사랑의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커지고
에너지가 정체되었을 때
감사함은 사라집니다.

감사함이 사라졌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상태와 에너지 상태를 점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자신이 숨 쉴 수 있음에도 감사하십시오.

감사함을 회복하면
가슴이 따뜻하고 넓어집니다.
감사함을 회복하면
행복과 평화가 가슴으로 밀려옵니다
 
 
“Who do people say that the Son of Man is?”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Elijah,
still others Jeremiah or one of the prophets.”
(Mt.16.13-14)
 
 
 


Les larmes de joie (기쁨의 눈물) - Olivier Toussaint
    
Richard Marx - Right Here Waiting
 
조명연 마태오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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