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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22일 야곱의 우물- 마태 16, 13-19 / 묵 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2 조회수505 추천수6 반대(0) 신고
마태 16,13-19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3-­19)
 
 
 
 
◆한창 젊은 나이에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정체성 혼란으로 오랜 시간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살았다. 정체성의 부재이니 사는 의미도 모르겠고 기쁨도 즐거움도 없었다. ‘이렇게 사느니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느님 나라에 가면 평화와 안식을 누린다니 그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그 문턱 앞에서 서성거리기를 마흔이 다 되도록 했다.

‘나’를 모르는 방황의 시간 동안 답답한 마음에 점집도 가 보았고, 평일미사 참례와 봉사활동을 하면 은혜를 받는다는 말에 이곳저곳 미친 듯이 봉사활동도 다녔다. 한동안은 수도자·성직자에게 정성을 들이면 은혜 받는다는 말에 솔깃하여 마냥 그분들을 따라다닌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반응과 말에 좌지우지되면서 살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싫어지고 적대감만 생겨 종내에는 사람들을 피하며 살았다. 깊은 혼돈의 시간이었다.
그 고통스럽던 혼돈의 시간 끝에서 ‘나’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욕구·감정을 살피고 공감하면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되었고, 타인에게 향해 있던 에너지를 내 안으로 향하고 내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나의 삶은 달라졌다. 물론 외적인 조건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내 마음이 바뀌다 보니 그저 기쁘고 행복이 샘솟듯 넘친다. 하느님께서 순간순간의 삶을 당신의 지혜로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어제도 오늘도 나와 함께하시는데 이를 모른 채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에서 하느님을 찾아 헤매며 살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 세월 동안 마음 아프셨을 하느님을 생각하니 송구할 따름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정녕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가까운 보물을 알아내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는 ‘있음’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윤미경(평화심리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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