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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하는 손으로 기름을 닦는 이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9 조회수390 추천수3 반대(0) 신고

                  기도하는 손으로 기름을 닦는 이들
                                          "기름 닦는 것, 훌륭한 기도"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발생 77일째를 맞은 2월 21일, 자원봉사자 100만 명 돌파를 기념하는 감사행사가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태안군에서 "태안성당을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천주교 신자가 총 몇 명입니까?"하고 물어왔습니다.

매일같이 정확하고 치밀하게 '재난봉사 일지'를 기록한 덕에 쉽게 집계를 내어 군청 담당자에게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3일부터 금년 2월 18일까지 총 2만3581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했더군요.


신자 2만3000여 명 봉사에 자부심




▲ 오일펜스 기름 닦기 / 기름 제거 작업에는 오일펜스에 묻은 기름을 닦는 일도 포함된다.  
ⓒ 지요하  기름 제거


이 숫자는 태안본당을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타 본당 신자들만 집계한 것입니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시작한 군부대 간식 봉사, 그리고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오늘까지 자원봉사자 점심급식과 이런저런 임무를 맡아 연일 성당에, 또 작업 현장에 출근하는 태안본당 봉사자들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이지요. 다행스러움도 느꼈고, 감사와 미더움, 천주교 신자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 바다를 살리기 위해 한겨울 추운 날씨도 상관하지 않고, 또 원근(遠近)을 따지지 않고 각지각처에서 연일 태안을 찾아 용감히 '기름과의 전쟁'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올립니다.

'재난봉사 일지'를 살펴보면 태안에서 가장 먼 곳인 경상도 지방에서 제일 많이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구와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저녁때 먼길을 가시는 분들을 보노라면 숙연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경상도 지역 다음으로는 인천교구와 의정부교구 등이 꼽힙니다. 서울대교구 성당 신자들도 많이 오시긴 하지만, 교구 규모와 비교하면 다소 적은 듯싶고, 특히 강남 쪽 성당들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묘한 섭섭함을 자아냅니다.

학생들 중에는 더러 일하러 온 건지 놀러 올 건지 분간이 안 되는 행동으로 민망함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참으로 열심히 일들을 하십니다. 한번은 기름이 새카맣게 묻은 걸레를 옆에다 수북히 쌓아놓은 한 분 자매님께 감사를 표하니,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름을 닦고 있어요. 이 일 자체가 훌륭한 기도라고 생각해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 모래 속 기름 닦기 / 이미 수없이 반복 작업을 한 곳인데도, 모래를 파헤치고 작은 타르 덩이들을 잡아내고 모래 속의 기름을 닦는 한 자매님의 모습  
ⓒ 지요하  기름 제거


또 한번은, 몹시 추운 날 작업을 마치고 나온 한 자매님이 기름 묻은 장갑을 벗고 두 손을 호호 불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장갑 낀 손으로 그 자매의 두 손을 감싸쥐고 비벼준 적이 있지요. 평소 성당과 집에서 기도할 때마다 합장을 하던 그 손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름을 닦았으리라 생각하니 절로 그 손을 잡게 되더군요.

이렇게 태안의 해변에서는 연일 '기도'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미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기름과의 전쟁'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는 좀더 하느님을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될 듯도 싶습니다. 특히 천주교 전담구역 해변은 연일 수많은 신자들이 하느님 신앙을 표현하는 곳, 집단기도가 절절히 펼쳐지는 곳이라는 생각은 신선한 흥분마저 갖게 합니다.

그런데 요즘 태안본당 봉사자들은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설 연휴를 지나면서 자원봉사자 수가 급감한 현상 때문입니다. 태안 해변 '기름과의 전쟁'은 계속 '인해전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인원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정말 걱정이 됩니다.


아직도 손길 필요로 한다

  

▲ 갯바닥 속 기름 색출 작업 / 해변 기름 제거 작업에는 포크레인과 고압세척기 등 장비  뿐만 아니라 삽, 괭이, 호미, 꼬챙이, 쇠 브러시, 플라스틱 솔 등 갖가지 소도구들이 다 소용된다.  
ⓒ 지요하  기름 제거


태안본당 점심급식 팀은 주중에 작업인원이 100명 미만일 때는 떡국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 김밥과 컵라면으로 대신합니다. 미안한 일입니다. 태안본당 떡국 맛은 전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모든 이가 감탄하는 그 떡국을 주중에도 계속 제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땀 흘리고 나서 떡국 맛도 즐길 겸, 태안 해변에서 펼쳐지는 색다른 기도행사에 좀 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참여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실 때 모으는 그 손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태안 해변의 기름제거 자원봉사에 참여해 주시기를 거듭 호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주교계 주간지 <평화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2.29 11:10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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