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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돈(混沌)과 일체
작성자송동헌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01 조회수462 추천수5 반대(0) 신고
 
 

혼돈(混沌)과 일체


남해의 제왕은 숙(儵)이고, 북해의 제왕은 홀(忽)이며, 중앙의 제왕은 혼돈(混沌)이었다.  숙과 홀이 때때로 함께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아주 잘 대접하였다. 숙과 홀이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법을 의논하며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거늘 이분은 그것이 없으니 시험 삼아 뚫어보리라.” 그리고 하루에 구멍을 하나씩 내니 이래 째 되는 날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응제왕」편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혼돈 왕’ 이야기이다. ‘혼돈’은 숙과 홀이 보았듯이 일반적으로 질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스어로는 ‘카오스’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이 아직 그 안에 내재하는 질서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숙과 홀에게 혼돈 왕은 무질서하게 보였다. 있어야할 구멍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양극단에 있던 자신들이 혼돈에게 와서 조화를 이룬 까닭이 그들이 소유한 것과 같은 구멍이 없기 때문임을 알지 못하였다. 혼돈은 구멍이 없으므로 숙과 홀처럼 자신의 기호를 좇아 바깥일에 신경을 쓰는 일이 없이 스스로 도와 완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숙과 홀은 양극단에서 자신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혼돈에게 와서는 서로 비교할 일이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더 나은 것을 갖고 있다는 그들의 우월감은 결국 혼돈에게 구멍을 내주게 되었고 그들의 선의는 마침내 혼돈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창세기에 야훼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니 좋았다”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온 천하가 조화롭게 창조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축복하시고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기 1, 32)고 하신 말씀을 전해준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축복을 하신 까닭은 창조주인 하느님과 자연 사이에서 늘 새롭게 조화를 이루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창조된 만물과의 조화에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초부터 축복받은 존재였고 태어나면서 축복 받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장자가 이야기하는 두 왕의 비유처럼 조화를 보지 못하고 쉽게 무질서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 무질서는 어디에서, 왜 오는 것일까? 성경에 따르면 무질서는 사람 자체에게서 나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코 7, 20-23)

사람은 무엇이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기대에 맞추려한다. 그리고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면 큰 실망감을 나타낸다. 이러한 왜곡된 마음은 결국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놔두지 못하고 크게 훼손시키고 만다. 이것이 무질서의 근원이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고, “하느님의 종”이었고, 기다리던 “메시아”였다. 그들은 예수를 통하여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용서와 자유와 평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기대하던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정치적인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았고, 세속적인 결핍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받고, 박해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스스로 율법과 종교적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사셨다. 그렇게 사심으로써 우리도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완전한 자유와 평화로운 삶을 살도록 일깨워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숙과 홀이 혼돈 왕에게 구멍을 뚫듯이 예수에게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세속적인 영예에 대한 실망으로 가시관으로 씌우고 손발에 못으로 구멍을 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세상에서 드높아지고 싶어 했듯이 그분을 십자가에 드높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완전한 순명을 통한 일치 안에서 영원히 살아계신 하느님과 함께 살아있는 부활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우리 안에 계속 살아계신다.


숙과 홀의 이야기는 혼돈이 죽는데서 끝나는 비유가 아니다. 장자는 도와 일치하는 삶은 결코 손상될 수 없고, 죽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없음이 바로 혼돈에게는 있음이고 있음이 숙과 홀에게는 없음인 역설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서 결핍과 죽음만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혼돈에 비추어진 그들의 결핍이자 죽음이다. 그들의 구멍은 채워져야 할 결핍 그 자체이다. 형태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은 혼돈은 그 조화를 발견하고 볼 수 있는 자에게 변함없이 나타나는 조화의 신비체이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없듯이 혼돈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혼돈이 도와 일치를 이루는 사람 가운데 살아있음을 알지 못한다. 혼돈의 세계는 없음으로 있는 조화의 세계이고, 말로 전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이고, 모든 것이 일치를 이루는 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혼돈 안에 사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고, 죽음으로써 사는 사람이다.


출처: 좋은 날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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