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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과 평화의 삶 - 류해욱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02 조회수723 추천수6 반대(0) 신고
 

 - 2 년 전 경인일보에 실었던 글인데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올립니다.


 


  겸손과 평화의 삶


   며칠 전, 한강과 임진강이 서로 만나서 바다로 향하는 통일 전망대 부근에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른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잠시 겸손과 평화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때마침 하늘에는 한 떼의 철새가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역V자의 형태로 날고 있는 철새... 그 모습이 까만 한 점으로 보일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청둥오리, 가창오리, 쇠기러기...


   이름만으로도 정겨웠던 겨울손님이 이제는 ‘조류독감’으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었지만 푸른 하늘을 평화로이 날고 있는 철새의 무리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철새가 역V자의 형태를 갖추고 나는 이유를 알아냈다고 한다. 새들은 날개 짓으로 부력을 만드는데, 뒤에 있는 새는 앞에서 나는 새의 날개 짓의 부력으로 훨씬 쉽게 날수 있기 때문에 역V자의 일정한 간격으로 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날게 되면 혼자서 나는 것보다 71퍼센트 이상 배가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새들이 그런 정확한 과학적 원리를 알아서 역V자의 형태로 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힘을 준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오래된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새들에게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을 볼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도중 어느 한 마리가 아프거나 상처를 입게 되면 다른 두 마리의 새가 그 상처 입은 새를 따라 대오에서 떨어져 나온다. 상처 입은 동료를 도와주고 보호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아픈 동료가 다시 날 수 있거나 혹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함께 머물러 준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에서는 다친 동료를 돌보는 고래들의 따뜻한 동료애를 볼 수 있다. 지능이 높은 고래들의 사회는 거동이 불편한 동료 고래를 결코 모른 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나르듯 하는 모습과 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 모습이 고래학자들의 눈에 여러 번 관찰되었다고 한다.


   상처를 입은 동료를 위해 스스로 대오에서 낙오하여 그 옆에서 도와주고 보호해 주는 철새의 모습에서, 자신의 등으로 아픈 동료 고래를 떠받쳐서 아픈 고래가 물 위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고래들의 모습에서 인간인 우리는 배워야 하리라. 그들은 인간이 서로 나눔과 섬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장애인을 이해하게 되면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휠체어를 밀어주려 애쓰지 말고 장애인 스스로 휠체어를 밀고 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고, 전용통로를 만들어 주는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생활해 나가기 불리한 구조한 환경을 개선하고, 일하고 싶은 그들에게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사회가 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에는 장애, 비장애의 구분이 없다는 평등의 눈높이를 가지고 터무니없는 가족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의 중독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다양한 몸의 평등한 삶을 꿈꾸는’ 그런 세상은 얼마나 겸손하고 평화로울까.  장애와 비장애, 그것은 좋고 나쁨의 의미가 아니다. 화단에 핀 여러 종류의 꽃처럼 이 세상에 피어난 고유한 저마다의 꽃일 뿐이다. 


   저물어 가는 석양이 강 위로 고요히 물들고 있고 겨울 철새는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힘차게 날개 짓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간이 과연 만물의 영장이고 모든 동물들보다 더 지혜로운가를 다시 생각한다. 새들이 역 V자로 날 때 71% 이상의 부력을 창출한다는 것을 알아내는 과학이 과연 겸손과 평화의 삶을 이루는데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 류해욱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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